금융당국이 금리 급등에 대한 차주 상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잇따라 금융권을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의 ‘이자 장사’를 겨냥해 경고장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 여당이 차주의 대출 원리금 증가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 상품 출시 확대까지 요구하는 등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최근 시중은행의 변동금리 주담대 금리 상단이 6~7%에 달하는 등 금리가 급등한 상황인데다,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올리면 서민층의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선제적 판단에 따른 조치다. 다만 금리는 시스템에 따라 오르는 것인데 당국과 정치권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 0.25%p 오르면 연이자 부담 16만1000원 커져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시중은행에 ‘신잔액기준 코픽스’ 적용 상품의 출시 확대를 권고했다. 앞서 전날 국회에서 국민의 힘 주최로 열린 ‘물가민생안정특위’에서 여당이 금감원에 신잔액기준 코픽스 출시를 요청했지만, 이보다 앞서 금감원이 미리 금리 급등에 따른 차주 상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현재 코픽스 금리는 연 1.98%이지만, 신잔액 기준으론 연 1.31% 정도여서, 금리 기준만 바꿔도 상당한 인하 효과가 있다는 게 당국 분석이다.
국민의힘 물가민생안정특위 위원장인 류성걸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예대마진 공시 기간을 줄여 금리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예대마진 공개를 통해 은행 간 금리 경쟁을 유도해 이자율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게 특위측 설명이다.
특위는 또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금리상한형 주택담보대출’의 상품 판매를 연장하자고 주문했고, 당국은 금융권과 협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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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은행권의 과도한 이자 장사를 비판하자 실제로 은행들이 대출 금리 인하 행렬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이날 기준 연 4.56~6.66% 수준이다. 지난 17일(4.33~7.14%)과 비교하면 약 2주 동안 금리 상단이 7%대에서 6%대로 하락한 것이다. 다만 하단은 4.33%에서 4.56%로 0.23%포인트가량 올랐다. 또 은행은 예대금리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인식, 예적금 금리도 발 빠르게 올려 잡고 있다. 예금 금리는 높이는 한편 대출 금리는 낮추는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은행이 실제 대출금리를 어디까지나 낮출 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경제 리스크가 올 가능성이 커지고 은행의 부실 비율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대폭 낮추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최근 대출 금리가 실제 내려간 것은 맞다”면서도 “금리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낮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별로 공개하기로 한 ‘예대금리 차 공시 제도’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예대금리차를 비교 공시하면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금리차 키 맞추기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결국 고객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은행 간의 경쟁도 사라져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