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국민들은 국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린 지 꽤 됐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국민의 정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그것도 타기관 대비 압도적으로 낮은 신뢰도에 기인한 꼴찌다. 의원 개개인이 보여주는 품격,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 국민을 대하는 태도 등이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회정치의 중요성은 날로 커져 가는데 국회는 사회적 갈등의 합리적 조정자로서의 본분을 전혀 다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대한 국민의 반복되는 실망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더욱이 입법권의 상당 부분은 오히려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와 법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과연 일몰로 처리하는 법률은 얼마나 될까. 과연 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평온하고 안전하고 행복할까.
상황이 이런데도 요즘 국회는 국민의 관심과 전혀 동떨어진 선거제 논의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얼마 전 야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도 지난 선거 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통합형 비례정당’을 설립해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진작에 ‘국민의 미래’라는 위성정당 창당 작업에 돌입했다. 위성정당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꼼수가 난무하는 선거판을 보며 도대체 어떤 국민이 국회를 믿고 힘을 실어 주겠는가.
4년 동안 꼼수도입 했던 정당이나 부당함을 호소하며 저지에 나섰던 정당이나 전략적 고려나 확고한 개선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정당 통합이란 유권자 우롱을 자행하고도 시간만 보내더니 또다시 같은 문제로 같은 대응방식으로 답습하고 있다. 똑같은 패턴을 보이는 국회를 두고 이제 국회의 자정능력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아마 국회 스스로는 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지 못할 것이고 4년 전처럼 온갖 실력도 실적도 검증되지 않은 정치꾼과 정당들이 선거가 끝나면 거대 양당으로 흡수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거대 양당이 쏘아 올린 준연동형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의 폐해와 부작용은 고스란히 민생에 대한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기계(奇計)와 궤계(詭計)를 감춘 비례공천, 누군지도 모르는 인사, 싸움꾼이라는 인사, 심지어 국가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인사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란 지적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선거제를 둘러싼 이 촌극부터 결자해지해야 하지만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한 싸움에 혈안이 된 정당들이 과연 이해득실을 내려놓고 구조적 개혁에 나설 수 있을까. 이번 총선에 또다시 불거진 선거제 논란은 국회가 가진 기득권과 낡은 시스템을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한층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후보자의 자질과 실력보다 평판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는 후진적 청문회 제도, 권위주의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과도한 의원 특혜, 제 식구 감싸기에 국회의 권위를 사적으로 동원하는 방탄국회,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지 못하고 실적 경쟁하듯 의미 없는 법안들만 남발하는 의원들. 모두 오랫동안 꾸준히 국회에 제기돼 온 숙제들이나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과제들이다.
거대 양당이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지 귀 기울일 일도 없는 지금의 정치 지형이 한탄스러운 오늘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국민이 직접 회초리를 들 때가 올까.
알 필요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는 서러움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이제 국회도 지역과 이익의 매몰에서 벗어나는 개혁을 꿈꿔야 한다. 중요하고 장기적, 국가적 과제를 다루는 상원, 생활에 밀접한 국내적 문제를 다루는 하원의 양원제 도입으로 국가 백년대계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이 또한 연목구어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