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극 ‘섬: 1933-2019’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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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공연칼럼니스트] “떠나기 전날인 11월 20일 일요일. 그녀들은 성당에 다녀온 후 집의 전화기 전원을 뽑아놓았다. (……) 이렇게 비밀리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큰 할매와 작은 할매가 오스트리아 고향으로 아주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소록도에는 한바탕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큰 할매’ 마리안느 스퇴거와 ‘작은 할매’ 마가렛 피사렉은 소록도에서 떠나기 전날 밤을 이렇게 기억한다. 책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성기영 저, 위즈덤하우스)에는 할매들이 떠나지 못하게 누군가는 그들의 여권을 숨기려 했을지도 모른다고 쓰여 있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섬을 떠난다.
‘섬:1933~2019’(5월22일~7월7일, 국립정동극장)는 바로 이들,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극이다. 작품은 제목대로 1933년부터 2019년 사이 소록도에서 벌어진 일을 담고 있다. 어린 사슴을 닮았다 해 붙여진 이름 소록도(小鹿島). 한센인들의 섬이 된 것은 1909년 한센병 전문 요양소인 자혜의원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전염에 대한 공포로 비롯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피해 한센인들은 자발적 격리된 삶을 선택했다. 문제는 1933년 시작된다.
| 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공연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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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되었지만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던 한센인들의 삶은 1933년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가 부임하며 노예의 삶으로 전락했다. 치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섬에 들어간 백수선은 입도와 동시에 이곳이 지상낙원이 아닌 지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옥 같은 삶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은 연인 박해봉. 그러나 그는 탈출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게 된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 서사를 오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야기는 크게 네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30년대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시절의 백수선 이야기와 1960년대 소록도에 간호사로 파견 온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야기다. 두 사람은 파견이 끝난 후에도 남아 40여 년간 환자들을 간호했다. 그리고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의 이야기 펼쳐진다. 고지선은 백수선의 손녀다.
마지막 고지선의 이야기는 약간 결을 달리한다. 장우성 작가는 여기에 2017년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주민들의 찬반논쟁이 뜨거웠던 서울서진학교의 사례를 가져와, 장애의 범주를 확장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백수선, 고지선이 마가렛과 마리안느의 한국 이름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공연에서는 마가렛 역의 배우(정운선·정인지)가 백수선 역을, 마리안느 역의 배우(백은혜·정연)가 고지선 역을 맡는다.
‘섬:1933~2019’는 장우성 작가와 이선영 작곡, 박소영 연출이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는 선한 영향력의 인물들을 무대에 복원’하고자 기획한 ‘목소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2019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세 사람은 ‘목소리 프로젝트’를 통해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태일’(2017년)과 국내 최초 여성 법조인이자 여권운동가 이태영의 삶을 조명한 ‘백인당 태영’(2023년)을 무대에 올렸다. 5년 만에 재연한 이번 작품은 공연제작사 라이브러리컴퍼니와 정동극장에서 공동 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로 시작하는 정현종 시인의 ‘섬’은 ‘그 섬에 가고 싶다’로 끝난다. 음악극 ‘섬:1933~2019’는 그 거리,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이다. 여전히 이 땅 여기저기, 사람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장애도’(島)가 사라지길 간원하는.
| 음악극 ‘섬: 1933-2019’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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