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점화 직전인 1861년 초,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인선을 단행했다. 윌리엄 H. 슈어드(국무), 새먼 체이스(재무) 등 당내 경선 과정의 경쟁자들은 물론 에드윈 M. 스탠턴(국방) 등 민주당의 정적까지 내각에 끌어들였다. 최고의 라이벌이 최고의 실력자라는 그의 인사철학이 탕평내각(Team of Rivals)으로 이어진 셈이다.
링컨을 정치적 사표(師表)로 삼고 있는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2009년 초, 초대 조각과정에서 링컨의 길을 따랐다. 힐러리 클린턴(국무), 로버트 게이츠(국방) 등 당내 경쟁자와 부시정부의 각료를 끌어안았고 유리장벽에 갇혀 공직진출에 제약을 받던 소수 유색인들을 대거 내각에 발탁했다. 흑인 3명· 히스패닉계 2명· 중국과 일본계 각 1명. 오바마의 초대내각은 인종과 성별,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통합의 도가니· 통합의 용광로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한달만에 청와대와 내각구성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능력과 전문성 외에 국정 철학의 공유라는 공직인선 기준도 명확히 제시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인사지만 면면을 보면 기대보다는 우려, 울림보다는 냉소, 감동보다는 실망이 가득하다.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국정을 주도하는 건 현실정치에선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핵심요직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인사들로 채우는 게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공공기관의 일정 포스트는 전문성과 능력 뿐 아니라 정실과 엽관주의적 요소가 적당히 혼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게 행정학자들의 분석이기도하다.
남북전쟁으로 연방이 두 동강 날 위험에 처했던 링컨, 금융위기로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목도해야 했던 오바마는 포용의 용인술, 통합의 마술로 정치적·경제적 난국을 돌파했다. 지역·세대·이념·계층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2013년, 박 대통령이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실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헌정 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반대그룹을 끌어안고 가야 할 박 대통령으로선 인사탕평을 통한 포용의 리더십,대통합의 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치적 색채는 다소 달라도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적재적소의 인재를 통해 국정철학을 투영해야 실질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 박근혜 정부는 100% 대한민국 정권….” 인사탕평을 통해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겠다던 대선 직후 박 대통령의 3개월전 약속은 그러나 이젠 코드의 두터운 장벽에 막혀 반향 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울림으로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