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품귀 현상에 내몰린 세입자들이 ‘반전세’(보증부 월세)에 이어 매매로 서서히 돌아서고 있다. 가파르게 오르는 전셋값 부담에다 2년마다 옮겨다녀야 하는 전세살이의 서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매매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셋값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중산층이 많이 사는 아파트 입주 물량이 부족한데다, 매매나 월세로 이동하는 수요보다 사라지는 전셋집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집주인들이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면서 전셋값 부담이 커지자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수요자들이 하나 둘 월세로 돌아서고 있다. 하지만 월세의 경우 주거비 부담이 큰 만큼 최근에는 이씨처럼 아예 집을 사버리는 수요자가 적지 않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1월치로는 2006년 이래 사상 최다치인 6580건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매매뿐 아니라 지난달 전·월세 거래량도 사상 최다치를 기록한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서울지역 전·월세 거래량은 1만 284건으로 서울시가 확정일자 자료를 공개한 2011년 1월 이후 가장 많다. 연도별 거래량도 지난해가 최다로 13만 6953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순수 전세에서 반전세, 또는 매매로 옮겨 앉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이 팔리면 기존 전세로 살던 세입자들은 다른 집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전세 수요의 매매 또는 월세 이동에도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06%로 1월치로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았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도 지난 1월 기준 3억 4047만원으로 2년 전보다는 6109만원, 4년 전보다는 무려 9492만원 올랐다.
전셋값이 급등하는 주된 이유는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 재건축 이주 수요 증가, 정부의 매매 및 월세 수요 이동 정책에 따른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특히 재건축 사업이 몰려 있는 서울의 경우 올 한해 전세난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닥터아파트 집계를 보면 올해 서울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 3만 6797가구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2만 938가구다.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매매나 월세로 옮겨 앉거나 수도권 외곽으로 이전하는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
서초구 반포·잠원동 일대의 경우 다음달부터 신반포5차·반포한양아파트 등 재건축 이주가 시작되면서 벌써부터 전세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잠원동 한신27차 전용면적 59㎡는 전셋값이 최근 한달 새 2500만~3000만원 올라 2억6000만원~2억8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신반포5차 인근인 4차 아파트 전용 105㎡형도 지난해 말보다 5000만원 올라 전셋값 7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마저도 전세는 현재 나와 있는 물건이 없는 상태다.
잠원동 소망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전세 계약기간 끝나는 시점에 맞춰 반전세로 내놓기 때문에 전세 물건은 구경하기조차 어렵다”며 “물건이 나오면 당일 바로 계약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가 전세 수요를 매매 또는 월세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은 데 따른 반작용도 전셋값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전셋집이 크게 부족해진다는 심리적 위축감이 작용한 것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앞으로 아파트 전세 물량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되자 미리 전셋집을 확보하려는 수요자들이 계약에 나서면서 전셋값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