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파는 해저케이블…기술 ‘초격차’ 벌리는 LS전선[르포]

‘亞 최대 규모’ 동해 ‘VCV타워’ 첫 공개
쏟아지는 일감에 주문 밀려 추석도 반납
LS마린솔루션-LS전선아시아 ‘삼각편대’
유럽·미국·베트남·중동 등 신규시장 개척
시장 급성장에 부족한 인력 수급은 과제
  • 등록 2023-10-22 오후 12:00:00

    수정 2023-10-22 오후 7:31:22

[동해=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강원도 동해시에서 가장 높은 이곳.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생산설비인 수직연속압출시스템(VCV)타워 꼭대기 층에 올라서자 동해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아파트 63층 높이(172m)인 이 건물은 도심에 있을 법한 초고층 사무용 빌딩처럼 생겼지만, 내부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을 생산하는 설비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 19일 해저케이블 생산 작업이 한창인 LS전선 동해사업장을 찾았다. LS전선은 올해 5월 준공한 VCV타워를 이날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했다. 2009년 동해에 첫 공장인 해저 1동을 준공하며 해저케이블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LS전선은 올해 국내 유일, 아시아 최대 규모의 VCV타워(해저 4동)를 준공하며 연면적 약 27만㎡(8만1000평) 규모의 해저 1~4동 사업장을 갖추게 됐다.

지난 19일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직원들이 생산된 해저케이블을 점검하고 있다.(사진=LS전선)
LS전선이 해저 1동을 준공했을 당시, 전 세계적으로 해저케이블 시장은 유럽 업체들이 선도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였던 LS전선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날 지은 지 14년 된 해저 1동에 들어서자 투박함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김진석 설비효율화팀 팀장은 “선진국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쌓으려다 보니 초기에는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동안 쌓은 기술력을 결집해 만든 것이 해저 4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LS전선에 해저 4동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 건물과 기존 해저 1~3동과의 차이는 ‘수평’이 아닌 ‘수직’ 생산 구조를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점이다. 해저케이블은 지름 30cm 내외 케이블을 한 번에 수십km까지 끊김 없이 연속 생산하는 것이 핵심 기술력이다. 수평 생산 시 무거운 케이블이 아래로 처질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문제가 생긴 제품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김 팀장은 “케이블이 굵고 무거워지면서 수평 생산하던 기존 공정에서 고부가가치인 수직 공정으로 진화했다”며 “VCV타워는 케이블 원재료를 중력 방향으로 고르게 성형해 완성품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건물에 작업자는 단 한 명뿐이다. 공정 자율화를 통해 폐쇄회로(CC)TV로 작업 전 과정을 관리 감독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지난 19일 LS전선 동해사업장 턴테이블에서 직원들이 생산된 해저케이블을 점검하고 있다.(사진=LS전선)
LS전선이 해저 4동을 새로 지으며 생산능력(CAPA)을 대폭 확대한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HVDC 해저케이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시대를 맞아 에너지원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에서 전기에너지로 바뀌고 있다.

이날 해저 4동에서 부지를 내려다보니 해저케이블 완제품을 쌓아두는 총 4개의 턴테이블 중 3개가 텅 비어 있었다. 완제품을 만들어 쌓아 두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없어서 못 파는’ 공급자 위주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김 팀장은 “현재 설비를 확충 중인 해저 4동을 제외한 공장 가동률은 100%로 올 추석에도 쉬는 날 없이 24시간 풀가동했다”고 말했다.

LS전선 동해사업장은 롤러코스터 레일처럼 생긴 갱웨이(케이블 전용 운반로)로 전체가 연결돼 있다. 해저케이블은 500톤(t)에서 최대 1만t에 달할 정도로 무거워 장비로 들어서 옮길 수 없다. 실제 완성된 케이블을 발로 툭 건드려 보니 사람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갱웨이를 통해 해저에 포설할 선박(포설선)에 바로 실어야 한다. 완제품을 선박까지 무사히 잘 이동시키는 것 자체가 노하우인 셈이다.

이날 해저케이블이 동해항에 정박한 LS마린솔루션의 포설선 ‘GL203’에 실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선적되는 케이블은 무게 700t, 지름 22.6cm로 비금도 태양광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물량이다. 선적부터 운반, 포설까지 약 2주가 걸린다고 한다. 케이블은 분당 약 8m씩 이동해 선박에 차곡차곡 쌓였다. 바닷속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노란 칠을 한 케이블에는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 바닷물이 뿌려졌다. 포설선에 놓인 거대한 턴테이블은 LP판 대신 해저케이블을 천천히 돌려 감아내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지난 19일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형원 에너지시공사업본부장(가운데), 이상호 LS전선아시아 대표(왼쪽), 이승용 LS마린솔루션 대표가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사진=LS전선)
LS전선은 이날 자회사인 LS마린솔루션, LS전선아시아와 ‘삼각편대’를 구축해 글로벌 해저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동안 보유하던 ‘제조’ 능력에 올해 8월 인수한 LS마린솔루션의 ‘시공’ 능력을 더해 일괄(턴키) 수주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전남 ‘안마 해상풍력사업’은 양사 시너지가 빛을 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안마 해상풍력단지는 2027년까지 전남 영광군 안마도 인근에 532MW(메가와트)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해상풍력단지 건립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여기에 LS전선아시아까지 합세해 아세안 해저시장까지 선점한다는 구상이다.

LS전선의 자신감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글로벌 장거리 송전 케이블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아 소수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프리즈미안과 프랑스 넥상스, 덴마크에 본사를 둔 NKT, LS전선 등 4개 업체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LS전선의 기술력 확보 노력은 수주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LS전선은 2019년 6774억원에서 올 상반기 기준 5조4711억원으로 수주 잔고를 크게 늘렸다.

신규 시장 발굴에도 나선다. 김형원 LS전선 에너지·시공사업본부장(부사장)은 “현재 미국과 유럽, 베트남, 중동 등에 대한 시장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수요가 있는 곳에 새로운 공장 건설을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지에 생산 거점을 확보해야 운송비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투자 결정을 앞둔 상태다. LS전선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앞으로 5년 뒤 매출 1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LS전선아시아의 경우 2024년 매출 7억달러 이상을, LS마린솔루션은 2030년 현재의 6배인 매출 4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해저케이블 시장이 급격히 커진 만큼 부족한 인력 수급은 숙제다. 김 부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해저케이블을 포함한 해상풍력 발전 수요가 준비할 시간도 없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인력 확보가 무척 어렵고 기존 인력을 지키기도 어렵다”며 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S마린솔루션 해저케이블 포설선 ‘GL 2030’.(사진=LS마린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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