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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난민 보호 운동에 남긴 뚜렷한 발자취 덕분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결성된 국제연맹의 초대 난민고등판무관을 맡아 당시 러시아 내전에서 대량 발생한 난민 문제를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시키며 공동 해결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모든 국가가 난민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인도적 지원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난민협약과 난민법의 토대가 됐다. 1922년에는 난민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자 52개국의 승인을 얻어 난민 여권을 발급하는가 하면 1928년 정착 기금 마련을 위해 난민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기려 노벨상위원회는 그에게 1922년 평화상을 수여했다. 유엔(국제연합)은 1955년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지난해 난센상은 시리아 난민 수용에 앞장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돌아갔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은 1951년 7월 채택됐다. 국적국, 혹은 거주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모든 협약국이 차별 없이 보호하자는 것이 골자다. 당초 보호 대상자를 1951년 이전으로 한정했으나 1967년 난민의정서로 개편하며 기한을 없앴다.
유엔은 1947년 국제난민기구(IRO)를 창설한 데 이어 1950년 유엔난민기구(UNHCR)를 출범시켰다. 2000년에는 총회 특별결의안을 통해 아프리카 난민의 날이던 6월 20일을 세계 난민의 날로 제정하고 이듬해부터 기념식을 열고 있다.
우리나라 난민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법무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94년 이후 누적 난민 신청자가 처음으로 9만 명을 돌파했다. 올 4월 말까지 난민 신청자는 9만32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심사 대기나 자진 철회 등을 제외하고 심사를 마친 사람은 4만8554명인데, 1364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돼 난민 인정률은 2.8%이다.
난민으로서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지만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인도적체류자 2516명을 합쳐도 보호율은 8.0%에 그친다. 이는 2000~2017년 190개국 평균 난민 인정률인 29.9%와 보호율 44.2%에 한참 못 미친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한국 뒤에 자리한 나라는 이스라엘과 일본뿐이다.
낮은 난민 인정률뿐 아니라 부족한 난민심사관, 긴 심사기간, 불공정한 조사과정, 까다로운 절차, 열악한 대기실 환경 등도 문제로 꼽힌다. 난민 신청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난민법이 난민보호법이 아니라 난민추방법이라는 말까지 듣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일찍부터 난민 문제를 겪으며 포용과 연대의 가치를 지향해온 유럽에서도 최근 들어 찬반 논란이 격화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는 물론 난민 수용 모범국으로 꼽혀온 독일에서마저 반난민 정서가 고조되는 실정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을 거치는 동안 많은 난민을 낳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했다고 평가받는 요즘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성소수자들이 프랑스와 호주 등지에서 난민 인정을 받아 거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거론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올 4월 미국 의회 연설에서도 자유와 인권과 연대의 가치를 역설했다. 대통령의 약속이 난민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이희용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전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