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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도피 21년 만에 해외에서 붙잡혀 송환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이 국내 거주하는 한 캐나다 시민권자의 A(55)씨 이름을 이용해 신분을 세탁한 뒤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국제협력단)은 23일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정씨는 1997년 IMF 사태 당시 한보의 자회사 자금 322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자 도주한 뒤 이달 중남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혀 지난 22일 압송됐다. 그는 지난 1998년 6월 검찰수사를 받은 뒤 잠적해 2008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재산국외도피죄)로 기소돼 2023년 9월 23일 재판시효가 완성될 예정이었다.
재판시효는 공소가 제기된 범죄가 판결 확정 없이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당시 기준으로 15년이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2023년이면 정씨를 재판에 넘길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해 8월부터 정씨의 본격적인 소재 추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검찰은 정씨 처와 가족들이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실을 알아낸 뒤 수사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정씨 가족의 캐나다 거주 관련 서류에 가족 스폰서로 A씨 이름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A씨는 국내 거주 중으로 캐나다에 간 사실이 없는 데다 정씨 가족 거주와 관련된 캐나다에 제출된 사진과는 다른 외모였다. 또한 2010년에 국내에서 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검찰은 정씨가 신분세탁에 A씨 이름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처음에는 에콰도르 대법원에 정씨에 대한 범죄인인도를 청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은 에콰도르 대법원에서 범죄인인도 요청이 좌절되자 에콰도르 정부와 강제추방절차를 협의해왔다. 그러던 중 검찰은 지난 18일 정씨가 L.A를 목적지로 18일(에콰도르) 현지시각 오전 4시에 떠나는 비행기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에콰도르 정부에서 통보받고 정씨 검거에 나섰다
이후 이 비행기가 파나마를 경유하는 것을 확인한 검찰은 파나마 이민청과 공조를 통해 정씨를 현지시각 오전 8시 경부터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한 뒤 파나마 대사관 소속 영사가 정씨를 면담, 정씨의 자진귀국 의사를 끌어내 브라질(상파울루), UAE(두바이)를 경유해 정씨를 국내로 송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