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로 석유화학 시황이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석유화학 1위 업체인
LG화학(051910)이 구조개혁을 선포한 데 이어 최근 이례적으로
효성(004800)의 조현준 회장이 임직원에게 경영 위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업계의 고강도 구조조정을 위한 움직임이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 LG화학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전경.(사진=LG화학) |
|
23일 업계에 따르면 조현준 회장은 최근 임원과 팀장 등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가 만연해 있다”고 쓴소리를 하며 ‘책임 경영 강화’를 주문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조 회장이 직접 이메일을 보내 이같이 지적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최근 경영 위기를 엄중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효성화학은 올해 1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2분기에도 600억원대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쌓인 적자 규모는 5000억원을 뛰어넘었다. 효성화학은 실적 부진으로 국내 대전 나일론 필름 생산라인 철수 등도 검토 중이다.
조 회장은 이메일에서 “사업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위기의식을 못 느껴 시장 환경의 변화와 경쟁자의 위협 증대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적극적 대응이 미흡하고,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해 수익이 악화되는 것에 대한 개선책이 구체적이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하면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고강도 사업 재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업계 선두인 LG화학이 구조조정을 선포한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LG화학은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회사의 사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재편하겠다며 구조개혁을 선포한 상태다. 구체적으로 장기 가동 중지, 사업 철수, 지분매각, 합작법인(JV) 설립 등의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가동을 중단한 전남 여수 NCC(나프타분해시설) 2공장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수익성 악화로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1660억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 508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 LG화학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을 100억~300억원대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 동북아 기준 연간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스프레드 동향.(자료=메리츠증권) |
|
올해 하반기에도 중국발 공급 과잉과 주요 제품 가격 하락으로 석유화학 시황이 더디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계사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사업부 매각 등 석화 업계의 사업 재편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그룹 석유화학 계열사 한화토탈에너지스의 경우 최근 지속되는 적자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경영진은 수분기째 영업손실이 지속되자 직원들에게 비용 절감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부진 타개를 위해 지난달 충남 대산공장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 파일럿 공장을 준공했다. POE는 기존 폴리에틸렌 제품보다 밀도가 낮고 탄성이 높으며 충격강도가 우수해 자동차 내외장재와 전선 등의 소재로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은 시황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정유사들의 석화 사업 진출로 하반기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다. 석유화학 업황을 가늠하는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나프타 가격 차이)는 15개월째 손익분기점인 톤(t)당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이달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t당 100달러 중반대로 공장을 돌릴수록 오히려 손해가 나는 처지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석유화학 제품을 둘러싼 과잉 재고와 중국발 신규 생산능력(CAPA) 증가 영향으로 기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에 있어 가격 상승과 수익성 개선 흐름은 다소 지연될 전망”이라며 “만성적 공급과잉으로 중장기 석유화학 사이클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