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호의 Intuition] MB '공정사회'의 마케팅전략

  • 등록 2010-09-14 오전 11:25:29

    수정 2011-08-23 오후 8:54:28

[이데일리 경제부 팀장]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의 담배제조회사 필립모리스(Philip Morris Companies Inc.)는 지난 2003년 회사명을 알트리아(Altria Group Inc.)로 바꾼다. 그룹의 자(子)회사들이 유해산업을 상징하는 모(母)회사의 브랜드와 연결되면서 그룹 전체의 이미지가 동반 하락했기 때문이다. 알트리아는 영어의 'altruism(이타주의)'과 라틴어의 'altus(높다)'를 접목한 신조어로 '착한기업'으로의 이미지 전환을 위한 리브랜딩(rebranding) 전략의 산물. 그러나 며칠 후 시사 연재만화 '둔즈베리(Doonesbury)'는 "알트리아를 보면 암과 죽음이 연상된다"며 신랄하게 꼬집는다. 겉모습만 은근슬쩍 바꾼 눈속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리브랜딩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영국의 대표적인 패션브랜드 버버리(BURBERRY)는 90년대 후반 전격적인 리브랜딩에 들어간다. 반세기 넘도록 고정된 스타일을 고집, 구식 이미지가 팽배해지면서 젊은층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버리는 일단 회사명을 버버리 가문의 잔영이 드리워진 'Burberry's'에서 현대적인 느낌의 'BURBERRY'로 변경한다. 여기에 전통 체크무늬를 변형, 젊은층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밝고 가벼운 색상을 파격적으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전통적인 핵심가치와 현대적인 가치를 결합한 내부의 혁신과정을 통해 버버리는 명품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재창출하며 제2의 도약에 나선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핵심 국정지표로 리브랜딩한 이후 사회 전체가 '공정' 신드롬에 빠져 있다. 정치권은 이런 저런 법안을 공정법안이라고 명명하며 부산을 떨고 있고, 관가는 각종 정책들을 공정의 틀아래 묶어 공정관련 제도라며 견강부회(牽强附會)식 홍보에 여념이 없다. 사정당국은 '공정의 칼'을 빼들어 공직인사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서겠다고 하고 인사청문회나 인사특채 파동에서 드러나듯 모든 가치 판단의 잣대는 공정의 '프레임'속에서 정리되고 있으니 가히 '공정 열풍'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온다는 점이다. 공정사회는 또 다른 국정 어젠다인 '친서민' 기조와 중첩되면서 '경쟁' 보다는 '분배'와 '복지'의 이미지를 더욱 짙게 풍겨 뉴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정사회는) 기득권자에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명은 기존 질서에 대한 공격으로 비쳐지며 정권의 지지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공정사회라는 담론이 인민재판식으로 흘러가면 안된다며 직접 경고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호주 그리피스 경영대학원(Griffith Business School)의 빌 메릴리스(Bill Merrilees)와 데일 밀러(Dale Miller)교수는 '기업 리브랜딩의 원칙(Principles of corporate rebranding)'이라는 논문에서 리브랜딩의 핵심원칙은 기존의 핵심가치(core values)를 유지하며 새로운 가치를 접목하는 일이라고 정리한다. 리브랜딩에 실패하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핵심가치와 단절된 채 내부의 혁신을 등한시하고 표면적인 이미지 관리에만 치중하는 반면 리브랜딩에 성공하는 기업들은 본연의 핵심가치를 유지하며 내면적인 혁신을 통해 고객의 니즈(needs)를 충족하기 위한 가치창출에 나선다는 얘기다.

리브랜딩의 원칙은 비단 글로벌 기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정치권력의 리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브랜드가 기존의 핵심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정권 내부의 혁신에 대한 밑그림을 분명히 제시할 때 리브랜딩은 고객인 국민에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내부의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없고, 브랜드의 갑작스런 변경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는 리브랜딩은 정권에 반대하는 진영엔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찬성하는 진영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글로벌 기업의 리브랜딩 원칙은 그러나 MB의 리브랜딩 과정에선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정권이 표방하고 있는 뉴 브랜드(new brand)가 올드 브랜드(old brand)의 핵심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내부의 혁신 프로그램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공정 사회는 '기계적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이라면서 고교 교과서에 나옴직한 원론적인 뜻풀이를 공정사회의 의미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걸 보면 정권 내부에서조차 새롭게 표방한 가치의 의미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권력 내부에서부터 공정사회의 가치에 대해 혼선을 겪는 듯 하니 고객인 국민들이 느끼는 의구심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권 내부에서부터 공정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뼈를 깎는 혁신을 어떻게 단행할지 정권차원의 제도화 방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공정의 가치가 이 정권이 처음 제시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실용'의 가치와는 어떻게 접목되고 '반부패, 특권없는 사회'를 표방했던 이전 정권의 가치와는 어떻게 다른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의 공정'이 기득권 때려잡기로 전락한 '노무현의 공정'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천착하려면 리브랜딩의 원칙에 따라 이를 뒷받침하는 마케팅 전략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공정의 외피만 뒤집어 쓴 철학 없는 정권'이라는 비판을 불식하고 공정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한 실용정권으로 고객인 국민에게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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