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WP)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단체와 탄핵을 촉구하는 비판 단체 양쪽 집회에서 모두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미국의 상징물들을 사용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했다.
| 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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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WP는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이뤄졌던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미국 국기를 흔들고 미국 국가를 부르며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에 참여한 것을 집중 조명했다.
WP 측은 ‘도둑질을 멈춰라’란 구호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 당선인의 패배로 끝났던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투표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 측 지지자들이 사용하던 구호라고 소개했다.
또 한국의 보수 정치 성향 지지자들이 최근 이 구호를 채택한 것은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적 발언의 결이 갈수록 유사해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그에 대한 예시로 2020년 대선 패배 당시 트럼프 당선인이 당시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정의 내리며 “내부의 적들”의 존재를 주장한 것처럼, 윤 대통령 역시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투입한 점 등을 유사성으로 꼽기도 했다.
WP는 특히 일부 극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이런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더욱 짙어져 왔으며, 12.3 계엄 사태 이후 그런 경향성이 더 심해졌다고도 지적했다.
WP는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단체들의 집회에서도 미국의 상징물이 사용되고 있는 점 역시 주목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1차 시도가 이뤄진 3일 광주광역시청 앞에서는 미국 버지니아 주의 구호인 ‘폭군들에게는 언제나 이렇게’(sic semper tyrannis)란 구호를 새긴 버지니아주의 상징 깃발이 휘날렸다.
이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인 1776년 채택했던 라틴어 구호로, 폭군들은 항상 비참한 결말을 맞게 돼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구소는 영국군에 대항하는 의미로도 사용됐다. 다만 이 구호를 쓴 버지니아주 기가 채택된 건 1861년으로, 버지니아주가 남북전쟁을 앞두고 미국 연방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한 이후였다. 이에 해당 깃발과 구호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측을 지지하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됐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 존 윌크스 부스 역시 범행 직후 이 구호를 외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WP는 국내 한 대학교수의 멘트를 인용해 광주광역시청에 걸린 버지니아 주 깃발의 의미를 분석했다. 이 교수는 WP에 “윤석열이 결국 폭군이 맞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점을 상징하는 것이며 미국이나 버지니아 주에 대한 찬탄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광주광역시청에 걸린 버지니아주 깃발은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가 지난해 11월 버지니아주 대표단이 광주에 방문했을 당시 받은 환대에 감사를 표하는 의미로 광주광역시에 보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