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떠나는 봉욱 차장 "국민은 민생범죄에 주목해"

윤석열 총장 후보자 지명에 지난 20일 사의 표명
"경찰·검찰, 수사권 조정 국민 위한 결론내야"
  • 등록 2019-06-27 오전 10:30:30

    수정 2019-06-27 오후 3:11:42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27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검찰청 제공)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낙점된 지 사흘 만인 지난 20일 사의를 표명했던 봉욱(54·19기)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27일 퇴임했다. 그가 검사생활을 시작한 지 26년 3개월 만이다.

그는 이날 대검에서 진행된 퇴임식에서 “저는 오늘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첫 출근할 때 들고 왔던 오래된 서류가방 하나를 들고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떠나는 오늘, 그 가방에 여러분과 함께 나눴던 따뜻한 추억과 앞으로 품게될 그리움을 가득 담아 간다”며 “이 자리를 빌려 그간 세심하게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말씀 드린다”고 강조했다.

봉 차장은 “정의롭고 믿음직한 검찰, 따뜻한 인권검찰, 겸손·배려·경청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 강자에는 강하고 약자에는 따뜻한 검찰, 공정하고 바른 국민의 검찰을 마음에 품어 봤다”고 지난날의 다짐을 돌아봤다.

그는 검찰을 향해서는 “이제 국민소득 3만달러의 인권 선진국 시대를 맞아 국민들은 내 사건 하나하나가 제대로 처리되기를 원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 국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이 민생범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생범죄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수사하고 재판하기 위해서는 인권 선진국 시대에 걸맞은 인적·물적·과학적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한다”며 “사건 하나하나를 정성과 성의를 다해 처리하고 겸손·배려·경청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선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근본 가치와 추상적인 원칙과 함께 구체적인 상황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펴야만 하겠다”며 “수사와 재판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하면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 차장은 서울 출신으로 여의도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3년 서울지검 검사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과 대검 공안기획관, 법무부 인권국장·기획조정실장 등 특수·공안·기획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7년 5월부터는 대검 차장을 역임하며 2년간 문무일 검찰총장을 보좌했다.

봉욱(오른쪽)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27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감사패를 받고 있다. (사진=대검찰청 제공)


다음은 퇴임사 전문.

□감사의 말씀

만나뵐 때마다 미소 짓게 되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검찰가족 여러분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지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1993년 3월 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검사로 임관하여 26년 3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에서 교통과 관광 전담을 맡아 허둥지둥 대면서 검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베테랑 이창우 계장님과 노련한 황남순 실무관님의 도움으로 첫 번째 역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공판부를 거쳐 형사4부에서는 부장검사님들의 자상한 지도 아래 1년간 금융과 외사(外事) 전담을 맡아 검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을 익히고 전문 검사의 길도 꿈 꿀 수 있었습니다.

26년 3개월의 세월 동안 훌륭하신 선배, 동료, 후배 검사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았습니다. 고맙고 정다운 여러 수사관님들, 실무관님들과 함께 소중한 보람과 추억을 쌓았습니다. 정의롭고 믿음직한 검찰, 따뜻한 인권검찰, 겸손·배려·경청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 강자에는 강하고 약자에는 따뜻한 검찰, 공정하고 바른 국민의 검찰을 마음에 품어 보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간 세심하게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말씀 드립니다. 지난 2년간 투명하고 바르고 열린 검찰을 만들기 위해 하루도 편한 날 없이 진력해오신 문무일 총장님께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인권 선진국 시대에 걸맞은 검찰서비스

검찰가족 여러분!

오랜 시간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면서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범죄가 공안사건에서 특별수사 사건으로 바뀌어왔고, 최근에는 아동학대와 성폭력,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사건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1960년대와 70년대, 80년대에는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들이 가장 크게 문제되었다면, 1990년대 문민정부 이후 30년 동안은 부패범죄와 기업범죄, 금융증권범죄들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국민소득 3만불의 인권 선진국 시대를 맞아 국민들은 내 사건 하나하나가 제대로 처리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의 억울한 사연을 충분히 경청하고 납득할 수 있게 처리되기를 바랍니다. 얽혀있는 분쟁과 갈등을 풀뿌리까지 파헤쳐 해결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국민들은 장애인, 아동, 여성, 노인,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취약 노동자 등 기댈 곳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 안전 범죄에 대해 국가가 사려 깊게 예방하고 엄정히 처벌해 주기를 요구합니다.

제가 1997년 미국 코네티컷 주 검찰청에서 4개월간 수사와 재판에 참여했었는데, 그 청의 검사들이 가장 열정을 다하는 분야가 아동학대, 성폭력, 가정폭력 전담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도 아동학대, 청소년폭력, 가정폭력, 차별방지 이슈들은 관심이 큰 과목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이 민생범죄입니다. 울산 아동학대 살해사건으로 ‘서현이법’이 제정되었고, 음주운전 사망사고로 ‘윤창호법’이 도입되었습니다. 화력발전소 사망사고로 ‘김용균법’도 만들어졌습니다. 사건 발생부터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언론과 미디어의 관심도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서민들의 재산은 물론 인격까지 훼손시키는, 다단계사기, 보이스피싱, 인터넷도박, 사기·위증·무고와 같은 거짓말범죄로 인한 국가적 폐해도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민생범죄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수사하고 재판하기 위해서는, 인권 선진국 시대에 걸맞은 인적, 물적, 과학적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합니다.

현재 형사부 검사 한 명당 월 140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한 달에 20일을 근무할 때 한 사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에 불과합니다. 일본 검찰은 1인당 월 50건 정도를 다루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고 합니다. 공판검사 숫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제는 사건 하나하나를 정성과 성의를 다해 처리하고, 겸손·배려·경청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형사부 검사실에서 한 사건 당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한 일본 수준으로 늘리고, 검사와 검찰수사관, 실무관의 전문성도 강화하여 검찰 서비스의 품질과 만족도를 한층 높여야 할 시점입니다.

아울러 민생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초동 수사 단계부터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검찰과 경찰이 한마음으로 합심하여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올해로 제정된 지 65년이 되는 형사소송법과 70년이 되는 검찰청법도 국민의 인권과 사법적 정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개정하고 보완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법을 바꾸고 수사 프로세스와 방식을 변경함에 있어서는,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근본 가치와 추상적인 원칙과 함께 구체적인 상황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펴야만 하겠습니다.

변사체가 발견된 경우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검찰에 접수되는 연 10만건의 고소·고발장은 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영장신청시 부족함이 확인되는 부분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선거범죄를 비롯하여 공소시효가 1년 남지 않은 사건을 흠결 없이 처리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검경 합동수사가 필요한 대형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시점부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현장 사법경찰관의 견해와 지휘 검사의 판단이 다를 경우 어떻게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것인지, 검찰과 경찰 수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검찰이 꼭 해야 할 직접수사와 특별수사 범위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모든 세밀한 이슈들에 대해, 수사와 재판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하면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가방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검찰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첫 출근할 때 들고 왔던 오래된 서류가방 하나를 들고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려고 합니다. 26년 전 검사로 출발할 때 아버지께서 주신 가방입니다. 오랫동안 들고 다녀 손잡이 부분은 손때가 잔뜩 묻고 반질반질합니다.

검찰에 첫 걸음을 내딛으면서, 그 가방에 저의 초심과 함께 검찰가족 여러분들과 함께할 기대와 설렘을 담고 왔습니다. 떠나는 오늘, 저는 그 가방에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추억과 앞으로 품게될 그리움을 가득 담아 갑니다.

이제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 나눌 날을 기약하면서, 새로운 길에서도 여러분들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려,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항상 듬직하고 자랑스러운 딸과 아들에게도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검찰가족 여러분들 가정에 환한 웃음꽃과 정겨운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그 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여러분들과의 인연을, 첫사랑과 같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9. 6. 27.

대검찰청 차장검사 봉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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