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파생상품 손실’ 현대엘리에 1700억 배상…9년 만에 결론(종합)

쉰들러홀딩스, 현정은 회장 등 경영진 상대 주주대표소송
경영권 방어 위해 파생상품 계약…7000억대 손배소 제기
2심 이어 대법도 “현정은 회장,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 배상”
대법 “손실 위험성 충분히 따지지 않고 필요 조치 안 해”
  • 등록 2023-03-30 오후 12:54:23

    수정 2023-03-30 오후 7:46:02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다국적 승강기회사 쉰들러홀딩스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쉰들러홀딩스의 손을 들어줬다. 쉰들러가 현정은 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낸 지 9년 만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진=이데일리DB)
30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쉰들러홀딩스가 현정은 회장과 한상호 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소송은 쉰들러의 현대상선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우려에 현대엘리베이터(017800)가 현대상선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5개 금융사에 우호지분 매입을 대가로 연 5.4~7.5%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파생상품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현대증권은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동일한 기업집단인 현대그룹에 속한 계열회사로,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로서 그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파생상품 계약은 △계약상대방이 계약 기간 동안 현대상선이 발행한 주식을 보유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약상대방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며 △만기 시와 계약 체결 시의 현대상선 주가를 비교해 차액을 정산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계약 만기에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의 주가가 계약 체결 시보다 하락해 계약상대방에게 막대한 금액의 정산차손금을 지급했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였던 쉰들러가 현대 측이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함으로써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며 지난 2014년 초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22년 말 기준 쉰들러가 가지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15.5%로 1대 주주다.

하지만 감사위원회가 답변하지 않자 쉰들러는 주주대표소송을 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의 이사가 정관이나 임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실을 초래한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1심은 현 회장 등 경영진 측 손을 들어줬다. 파생상품 계약이 없었다면 현대상선 경영권을 지킬 수 없게 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속한 현대그룹이 분할될 위험이 있었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당시 재판부는 “파생금융상품 계약 체결 당시 해운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현 회장 등은 신의성실에 따라 경영상 판단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쉰들러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고, 1700억원 가운데 190억원은 한 전 대표와 공동해 지급하라고 했다.

2심은 “현 회장은 파생상품 계약 체결 여부를 결의하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현대엘리베이터 이사들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파생상품 계약 체결을 의결하는 것을 막지 않는 등 감시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다만, 해운업 불황이 지속되면서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 예측하기 어려웠던 점, 의무 위반 정도에 비해 손해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 점, 현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일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배상 책임을 줄였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손해의 범위와 책임 제한의 정도도 원심과 같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의 이사가 계열회사와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면서 부담해야 하는 의무와 검토해야 할 사항에 대한 최초의 판시다.

대법원은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발행 신주를 인수할 경우 이사는 재정적 부담, 계열회사의 재무상태, 예상되는 이익과 불이익의 정도 등을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제3자와 계열회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이사는 기초자산인 계열회사 주가 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과 규모, 소속 회사의 부담능력 등을 객관적·합리적으로 검토하고, 그에 따라 파생상품 계약의 규모나 내용을 적절하게 조정해 소속 회사가 부담하는 비용이나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현 회장 등은 계약 체결의 필요성이나 손실 위험성 등에 관해 충분한 검토가 없었음을 알고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대표이사 또는 이사로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회사에 대해 부담하는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M&A를 시도한 사정은 인정되나, 피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가 오로지 피고들을 압박해 사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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