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위기의 크레디트스위스(CS)가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AT1)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된 데 대해 투자자들이 소송 검토에 나섰다.
| (사진=AFP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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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법률사무소 퀸 이매뉴얼은 “CS의 AT1 보유자들과 논의하고 있다”면서 “잠재적인 구제책을 모색하는 투자자들의 (소송) 요구가 수요일(22일)에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스위스금융감독청(FINMA)은 19일 UBS의 CS 인수와 관련해 “CS의 채권 가운데 160억스위스프랑(약 173억달러·약 22조 47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AT1)을 모두 상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CS의 AT1을 회계상 손실처리, 채권 가치가 사실상 ‘제로’가 됐다는 의미다.
AT1은 은행 등 금융사가 자산부실화 등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발행하는 완충재 역할의 채권으로, 후순위채권 또는 코코본드라고도 불린다. 은행의 자본비율이 미리 규정된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투자자 동의 없이 즉시 상각 또는 보통주로 전환해 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도록 설계됐다. 이번에 상각된 CS의 채권 규모는 2750억달러(약 360조원)에 달해 유럽 AT1 시장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일반적으로는 기업이나 은행이 파산하면 주주들이 먼저 손실을 보고 AT1 보유자들은 후순위로 손실을 보는 구조다. 하지만 이번 거래에서는 CS 주주는 UBS주식을 일부나마 받게 되면서 손실을 던 반면, AT1 보유자들은 빈털터리가 됐다. CS의 AT1을 보유하고 있는 액시엄얼터너티브인베스트먼트의 제롬 르그라스 리서치책임자는 “이건 단순히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번 조치로 AT1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계기가 됐다”고 꼬집었다.
영국의 알제브리스 인베스트먼츠의 설립자 다비데 세라는 “기본적으로 스위스 당국이 채권을 훔쳤다”고 맹비난 했다.
반면, 스위스는 채권 관련 규정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전통적인 자본 구조를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에 AT1보유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유럽 채권 시장에 혼란이 일자 유럽연합(EU)은 진화에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이번 크레디트스위스 사례와 달리 채권 보유자에 앞서 주주에게 손실을 계속 부담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은행 파산의 경우 주주가 AT1보다 먼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