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장기 침체에 빠진 가운데 내년 업황은 중국의 경기부양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언한 러·우 전쟁 종전이 현실화하면 극심한 저가 중국산 제품 공급 과잉과 수요 위축에 시달려 온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에도 반등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분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러·우 전쟁으로 여러 국가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동안 중국 석유화학 업체들은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를 받아 쓰며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19%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존 1위였던 사우디아라비아(14%)는 2위로 밀려났다.
이란의 값싼 원유도 저가에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란은 미국 바이든 정권에서 경제 제재가 느슨해지자 원유 수출량을 급격하게 늘렸는데, 이는 대부분 말레이시아를 우회해 중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지난 2022년부터 올해까지 러시아와 이란으로부터 배럴(bbl) 당 평균 10~20달러가량 저렴한 원유를 받아 정제한 뒤 자국 석유화학 업체에 공급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 LG화학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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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나라는 값싼 러시아산 원료 수입 길이 막히면서 지난 3년여간 제품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러시아는 러·우 전쟁 직전까지 한국의 압도적인 납사(석유화학 기초 연료) 수입국 1위를 차지했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0년 26%에 달했던 한국의 러시아산 납사 수입 비중은 2022년 7%로 급감했으며 올해는 0%대를 기록 중이다. 한국이 수입한 러시아 납사는 다른 지역 대비 톤(t)당 30~40달러 저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물량은 중국과 대만이 대신 쓸어 담게 됐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트럼프 2기를 맞아 러·우 전쟁 종전에 따른 업황 반등을 기대하는 이유다. 러시아 제재가 완화되면 저렴한 러시아산 원료를 받아쓰는 중국의 경쟁력은 약화하고, 한국 업체들은 러시아산 납사 조달을 재개해 원가 열위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예고한 강력한 경기부양책도 업황 반등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실적 부진은 중국 경기침체와도 긴밀하게 연관됐다. 잇달아 석유화학 설비 증설에 나선 중국은 지난 2020~2021년을 기점으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 범용제품 자급률이 100%에 도달하며 석유화학 제품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했다.
게다가 주요 증설 제품이 국내 주력 제품과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 1위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경쟁국으로 떠오르게 됐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석유화학 제품 수출 비중은 2020년 47.6%에서 지난해 40%까지 축소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 침체에 빠진 중국은 자국 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증설 물량을 해외로 쏟아내며 공급과잉을 일으켰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으로 내수가 되살아나면 주요 소비재 수요가 진작되고 석유화학 제품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중국은 경기 부양책 고삐를 세게 쥔다는 방침이다.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주요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에 더는 기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최근 3년간 한국 대비 유가 4~8%, 납사 4~5% 저렴한 원재료를 사용했는데 트럼프 2기 이러한 국면이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중국의 강력한 통화·재정정책도 수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