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영향력 확대 튀르키예, 에르도안의 실리외교 [파워人스토리]

반군 지지…시리아 정권 붕괴 수혜자로
아프리카서도 중재자 자처…영향력 확대
나토 회원국인 동시에 중·러와도 대화
'21세기 술탄' 자국내 강력한 리더십 기반
  • 등록 2024-12-16 오후 3:36:35

    수정 2024-12-16 오후 3:36:35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시리아 독재 정권 붕괴에 따른 최대 승자.”

시리아 반군이 지난 8일(현지시간) 50년 넘게 대를 이어 철권통치를 이어온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자 주요 외신들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최대 승자’ 중 하나로 꼽았다. 이란과 러시아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미국 등 서방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때 튀르키예는 10년 넘게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를 장악한 반군 일부 세력인 시리아국가군(SNA)를 지원했다. 튀르키예는 자국이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민주군(SDF) 견제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2002년 당시 이슬람계 정의개발당(AKP) 대표 시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사진=AFP)
튀르키예는 반군에 자금과 각종 군사 정보는 물론이고 무인기 등 공군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으며, 3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을 “형제자매”로 칭하며 수용했다. 튀르키예 내부에서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반군 지지를 중요한 외교 전략으로 밀어붙였고,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트뤼키예가 시리아에서 주도권을 잡게 됐다는 평가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에르도안은 항상 원해왔던 역내 영향력을 얻게 됐다”고 분석했다.

시리아 반군 지지 10년, 최대 승자로

지난 1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찾아 에르도안 대통령과 회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SDF와 SNA가 시리아 북부지역에서 벌이는 충돌에 대한 관리 방안이 주된 의제로,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재부상을 저지해야 하는 미국과 쿠르드족 분리주의 견제를 중시하는 튀르키예의 이해관계 차이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정치적 영향력 뿐만 아니라 에드로안 대통령은 시리아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볼 것으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다봤다.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약 900km 길이의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지난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시리아와 외교 단계를 단절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수천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시리아의 재건 사업은 튀르키예 기업들에게 큰 기회라고 짚었다.

영국의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객원 연구원 티모시 애시는 “튀르키예의 큰 승리이자 에르도안의 천재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중재자 자처하며 실리 추구 ‘독자 외교’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자적인 외교 노선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국제 무대에서 다양한 사안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1일 해안 임차 문제로 긴장이 고조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두 지도자를 수도 앙카라로 불러 양국의 긴장 완화 합의를 이끌어냈다.

서방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이면서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와도 대화를 이어가는 튀르키예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흑해 곡물협정 연장과 수감자 교환 등의 합의를 중재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선 미국, 카타르, 이집트와 함께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다각 외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시작된 외교 전략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며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통치해야 했고, 이에 외교에서 유연성과 실리를 중시했다.

이것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보다 독립적이면서 강경한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다. 예컨대 2019년 튀르키예는 미국의 F-35 전투기와 러시아의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S-400 도입을 동시에 검토했다. 이는 외교 문제로 상당한 파장을 미치며 전략적 요충지로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확인시켜줬다.

지난 10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21세기 술탄’…비판의 목소리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같은 외교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배경에는 ‘21세기 술탄’으로 불릴 만큼 튀르키예 내 강력한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기반이 있다.

그는 내각책임제 시절인 2003년 총선 승리로 59대 터키 총리가 됐고 2007년, 2011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해 최초의 3선 총리가 됐다. 당시 튀르키예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유럽연합(EU) 가입 협상도 시작했다. 이슬람과 시장 경제를 잘 융합시켰다는 평가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2014년 8월 튀르키예에서 역사상 첫 직선제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을 넘는 득표로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점차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운 그는 2017년 총리직을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직을 신설해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그 권한을 집중하는 개헌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2018년에 이어 작년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22년 동안 튀르키예를 통치하고 있다.

그는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로 부인인 에미네 에르도안도 공식석상에선 히잡 착용을 고집한다. 저금리 정책과 중앙은행 개입 등과 같은 비전통적인 경제 정책, 언론 통제와 같은 등 권위주의적 통치 등으로 인해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54년 흑해 연안 도시 리제에서 태어나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빈민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한때 길거리에서 사탕, 빵, 생수 등을 팔며 학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이스탄불 시장을 지냈고 2001년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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