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한국형사법학회와 한국형사정책학회가 30일 피의사실공표죄 관련 규정의 개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번 의견서는 지난해 12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고(故) 이선균 배우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고(故)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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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사법학회와 한국형사정책학회는 이날 의견서를 통해 “피의사실공표죄가 존재함에도 수사기관이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대국민 홍보’를 명분으로 수사 중인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형법 제126조는 수사기관이 직무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고 피의자의 명예와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주요공직자 직무범죄나 부패범죄 수사 과정에서 외압 차단, 강력범죄의 추가 피해 방지 등을 이유로 ‘수사경과 브리핑’이라는 형태로 피의사실을 공개해 왔다. 양 학회는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수사능력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수사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최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행위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견서는 유명인의 경우 언론의 과도한 보도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고 이선균 씨 사건을 예로 들면서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의 조리돌림을 당하고, 수사과정에서 불필요한 사생활 관련 논란이 피의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고 짚었다.
형사법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인 문제로 피의사실공표로 인한 낙인효과를 꼽았다. 최종적으로 무죄로 판명된 경우에도 피의사실공표행위로 인한 낙인이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 죄인이라는 오욕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지적이다.
이에 양 학회는 △수사기관의 자정 노력 △피의사실공표 피해자 명예회복방안 마련 △피의사실공표행위의 법적 허용 한계 설정 △실효적 방지방안 수립 등을 위한 정교한 법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입법 및 행정 당국에 촉구했다.
아울러 형사법학계도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이번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개선과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