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출금리 인하만 주장하면 선(善)인가?

여야, 긴급생계비대출 금리 15.9% 인하 주장
고신용자 고금리 내는 이상한 금리 역전 발생
"저신용자 고금리, 고신용자 저금리가 시장 원리"
법정 최고금리 조정도 논의해야 하나 국회 반대
  • 등록 2023-02-13 오후 4:41:17

    수정 2023-02-13 오후 7:30:39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정치권이 금리 문제와 관련해 ‘생색내기’ 좋은 인하만을 주장하면서 정작 진지하게 논의해야 문제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사금융 팽창을 막기 위한 사업에 예산을 배분하지 않거나 저신용자의 제도권 금융 포섭을 위한 최고금리 조정 문제 등을 소홀히 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4분기 금융업권별 가계대출 전월 대비 증감액 단위=조원 (자료=금융당국)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의 취약계층이 연 15.9%로 최대 100만원을 빌릴 수 있는 긴급생계비대출의 금리 인하를 검토한다. 기본 금리는 그대로 가되 성실상환자가 50만원을 추가로 빌릴 때 제공하는 현재 연 2%p의 우대금리폭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여야가 모두 긴급생계비대출 금리가 너무 높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긴급생계비대출 금리를 더 낮추면 서민금융 금리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긴급생계비대출 대상은 신용도로 치면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이들이다. 저축은행에서 햇살론(연소득 3500만원 이하, 또는 연소득 4500만원 이하이면서 신용평점이 하위 20% 이하)을 받을 수 있는 이들보다 신용도가 더 나빠 제도권 금융 이용이 사실상 어려운 경우다.

현재 긴급생계비대출 금리와 햇살론 금리는 연 15.9%로 같다. 만약 긴급생계비대출 금리를 낮추면 신용도가 더 나쁜 이들(긴급생계비대출 대상)이 더 좋은 이들(햇살론15 대상)보다 낮은 금리를 받는 ‘이상한’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저축은행 이용 차주가 은행 차주보다 더 돈을 싸게(금리를 낮게) 빌리는 것 같은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되면 저축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차주까지 긴급생계비대출을 노릴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리 문턱을 너무 낮추면 저축은행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차주까지 선착순으로 긴급생계비대출을 신청해 한도 1000억원이 금방 소진될 수 있다”며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우려가 큰 진짜 취약차주가 혜택을 보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 가중평균금리 기준으로 저축은행 가계대출 금리는 연 14.75%다.

국회는 긴급생계비대출에 대한 예산을 한푼도 배분하지 않았다.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지금 정부 예산이 아닌, 정책금융기관(500억원)과 은행권(500억원)의 기부금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다. 국회가 금리 인하에만 집착해 정작 필요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국회는 법정 최고금리 조정 문제 역시 최고금리 ‘인상’이 초래할 비난 여론을 우려해 적극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단순 인하나 인상이 아니라 최고금리 상한을 한국은행 기준금리에 연동해 시장 상황에 따라 자동 조절되는 연동제 등도 고민했지만, 국회 벽에 막혀 논의를 중단한 상태다.

최고금리 인상은 절대악(惡)이 아니다. 거꾸로 최고금리가 빠르게 인하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최고금리 인하라는 선(善)해 보이는 정책도 불법 사금융 팽창이라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말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낮은 최고금리에 갇혀있는 대부업체 1위 ‘러시앤캐시’(아프로파이낸셜대부) 등 상위 대부업체 10여곳이 신규대출을 접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2021년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낮아진 후 최대 3만8000명의 대부업 이용자가 불법 사금융에 내몰렸다고 분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이 낮은 어려운 사람에게 부도위험(돈 떼일 확률)이 더 높아 더 높은 금리를 매기고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 낮은 금리를 주는 게 시장원리”라며 “금융과 복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낮은 금리만 주장하면 ‘금융 퍼주기’로 지속가능한 금융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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