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몸체를 감싸고 있는 770여 개의 국화무늬 자개가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크기가 2.5mm에 불과한 꽃잎 하나하나에 음각으로 선을 새겨 정교함을 더했다. 뚜껑 윗면 테두리의 좁은 면은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를 새겼고, 외곽에는 약 1670개의 연주무늬(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해 만든 무늬)가 고루 사용됐다. 가로 33cm, 세로 18.5cm, 높이 19.4cm 크기의 상자에 사용된 자개만 약 4만5000개에 달한다.
고려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가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 나전칠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점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20점도 안 될 정도로 희귀한 유물이다.
|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환수 언론공개회’에서 공개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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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공개했다.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년 이상 보관된 것으로 최근까지 일본에서도 그 존재가 감춰져 있었다. 3년 전 이를 사들인 고미술 관계자가 지난해 7월 재단에 존재를 알렸고, 1년여 간의 조사와 협상을 거쳐 마침내 올 7월 국내로 환수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번 유물은 자개 본래의 무지개 빛깔과 광택이 살아있고, 장식 재료의 보존상태도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도 매우 탁월하다”며 “오랫동안 사전 조사를 하고 과학적인 정밀검증을 통해서 구입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목재, 옻칠, 자개,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작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 꽃과 잎의 문양을 장식한다. 고도의 정교함과 복잡한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공예 기술의 집약체’라고도 일컬어진다. 특히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공예품으로 손꼽혀 왔다.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은 ‘고려도경’에 “나전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라고 기록했다.
|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뚜껑 윗면의 세부 모습. 안쪽부터 국화넝쿨무늬, 연주무늬, 모란넝쿨무늬 등이 확인된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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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개로 국화 또는 모란무늬를 기물 전면에 빼곡하고 규칙적으로 배치한 점, 단선의 금속선으로 넝쿨 줄기를 묘사한 점, 매우 작게 오려낸 자개에 음각의 선을 그어 세부를 표현한 점 등은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준다. 이용희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등 고려 나전칠기의 핵심적인 무늬와 구성 요소가 잘 남아있으며 세밀한 문양 표현과 빛나는 색감이 탁월하다”며 “약 80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보존 상태도 좋아 향후 연구 및 전시 자료로써 활용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번 환수 과정에서는 매입 전에 유물을 국내로 들여와 고려 나전칠기의 제작기법, 재료 등을 정확하게 분석해 밝혀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X선 촬영 등 과학적 조사를 통해 정밀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목재에 직물을 입히고 칠을 한 ‘목심저피칠기’(木心苧被漆器)로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칠기 제작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 일본에서 환수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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