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경계영 기자]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015760) 회사채(한전채) 발행한도 상향을 위한 한전법 개정이 부결되면서 정부와 한전을 비롯한 전력산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대로면 국내 전력 공급을 도맡고 있는 공기업 한전이 내년부터 내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서둘러 한전법 개정안을 재발의하고 임시회에서 연내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전의 회사채 발행이 막히는 내년 4월까지는 불과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아 한전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 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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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법 개정안 본회의 부결은 정부와 한전은 물론 국회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여·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병합심사 후 국회 산중위와 법사위도 큰 반대 없이 통과한 내용이 최종 관문에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이날 본회의에서 한 반대 토론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토론 이후 이어진 표결에선 민주당을 중심으로 반대·기권표가 쏟아지며 결국 과반 찬성에 이르지 못했다. 양이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한전이 회사채(한전채) 발행에 나선 건 뛰는 발전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라며 “한전채 발행이라는 미봉책을 추진하기 전에 전기료에 원가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전은 이로써 자본잠식 위기 상황이 이어지게 됐다. 한전은 한전법에 따라 채권 발행량 한도가 자본금과 적립금의 최대 2배로 묶여 있다. 그러나 올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석탄·가스 등 발전 연료비가 2~3배 폭등하면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고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한도를 5~6배로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추진된 이유다.
한전은 이미 약 72조원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그러나 내년 4월이면 그 발행한도가 약 40조원으로 대폭 줄어들며 더는 한전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된다. 한전이 올해 30조원(1~3분기 누적 21조8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내며 발행한도의 기준이 되는 자본금·적립금이 빠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빚을 내 운영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전기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전이 적자를 해소하려면 현재 1킬로와트시(㎾h)당 120원 남짓인 전기료를 1.5배인 180원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올해 전기료를 약 15~20%를 올려 물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1.5배 수준의 추가 인상은 산업체와 가정이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전기료 현실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급격한 인상은 물가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며 “ 정부 내에서 당장 급한 불을 끈 후 점진적인 현실화 논의를 이어가려던 차에 국회에서 한전법 개정 자체가 막혀버려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한전법 개정을 재추진한다. 민주당 역시 당론으로 이를 공식 반대하는 것은 아닌 만큼 개정안을 서둘러 발의해 임시회 표결에 부치면 물리적으론 연내 통과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국회 산중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성명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한전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자칫 우리 전력시장 전채가 마비되는 대혼란을 초래할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며 “야당도 국정의 동반자로서 책임있는 자세로 적극 협조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