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외교부 당국자가 장관에게 보고 없이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내용의 대통령실 입장을 일부 외신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 16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창호(왼쪽) 외교부 부대변인에게 질의하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MBC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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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유창호 외교부 부대변인은 일부 외신 기자들에게 지난 5일 오후, ‘프레스 가이드’(PG·보도 시 활용하는 공식 입장)를 배포했다.
유 부대변인이 보낸 PG에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 ▲헌정질서 파괴라는 지적(에 대한 반박) ▲야당과 타협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등의 항목으로 문답 형식의 대통령실 설명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해 헌법주의자이자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누구보다 숭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합헌적 틀 안에서 행동을 취함”,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통한 국정농단의 도가 지나치다” 등도 포함됐다. 특히 ‘45년 동안 이런 야당은 없었다. 아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70여년 동안 이런 야당, 이런 정당은 없었다’라며 ‘격정적인’ 표현이 서술됐다. 위헌·위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이는 대통령실이 지난 4일 비상계엄 선포·해제와 관련해 외신 문의 응대 과정에서 계엄 선포가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밝힌 입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별도 자료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 부대변인은 해당 PG를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고 보냈나’라는 질의에 “지시는 아니다”라고 했다. 유 부대변인은 “기자들의 질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의문(문의)에 제가 자료를 받게 됐다”라며 “정식으로 보낸 건 아니고,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외신 기자들에게 보냈다)”고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김영배 의원이 ‘자료 내용에 동의하느냐’라고 묻자 “알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는다”라고 답했다. 강인선 외교부 2차관 역시 모르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 등 대변인실 당국자도 해당 자료의 배포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