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1만엔권 지폐. /닛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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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일본 내 장롱 예금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낮은 은행 이자 때문에 차라리 현금 보유가 낫다는 측면도 있지만 부유층의 탈세 움직임도 포착되면서 경계감도 나온다.
일본 내 장롱 예금이 2월 말 43조엔(약 430조원)으로 1년 전보다 8% 늘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3일 보도했다. 증가액(약 3조엔)만 해도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0.6%에 달한다. 3년 새 30% 증가했다. 장롱 예금은 2월 말 지폐 발행잔고(99조엔)에서 결제로 사용된 액수를 빼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장롱 예금의 대부분은 기업이 아닌 개인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12월 국내 현금 중 80%는 개인 가정이 보유한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은행은 낮은 은행 이자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단기 정책금리를 2010년 말 0%로 낮춘 데 이어 지난해 초 마이너스 0.1%로 더 낮췄다. 이 탓에 대형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는 연 0.01%밖에 안 된다. 100만엔을 예금해도 연간 이자가 100엔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때문만은 아니란 분석이 나온다. 제로금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데다 현금 보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금을 보관할 금고 가격만 해도 20만엔(200만원)이다. 닛케이는 도쿄 내 세무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탈세를 위한 부유층의 현금 보관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세무당국은 상속세 부과액을 높이고자 지난해부터 재산이 3억엔(30억원) 이상인 사람에게 자산 상황을 담은 조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닛케이는 도쿄 내 한 세무사의 말을 인용해 “부유층 사이에서 탈세 의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국 규제를 피해 현금흐름 추적이 쉬운 예금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1억~2억엔의 현금을 저장할 수 있는 금고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다”는 금고업계 관계자의 말도 전했다.
현금 보유가 늘어나면 현금 유통이 불투명해진다. 세금을 걷어야 할 각국은 이에 현금 유통을 줄이려 노력 중이다. 인도는 지난해 고액권 유통을 폐지했고 유럽도 고액권인 500유로를 폐지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 애널리스트 쿠마노 히데키(熊野英生)는 “앞으로의 증세나 감시 강화 등 경계심을 품은 부유층의 (현금 보유 확대) 움직임이 장롱 예금 증가의 한 원인”이라며 “일본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해외 유출 등 부유층 자산 방어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