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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탁구 국가대표 홍차옥(56)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현정화(55), 양영자(60)와 더불어 한국 여자 탁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홍차옥은 탁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던 1988년 서울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선 ‘단짝’ 현정화와 함께 여자 복식 금메달을 수확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는 동메달을 함께 땄다.
특히 홍차옥의 선수 인생에서 가장 빛난 순간은 1991년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였다. 당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남북 단일팀 멤버로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남북 탁구 단일팀 이야기는 이후 영화 ‘코리아’로 제작돼 또 한 번 큰 화제를 모았다.
최근 한 탁구 생활체육 행사에서 만난 홍차옥은 30년이 훨씬 지난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이후에도 여러 종목에서도 남북 단일팀이 있긴 했지만, 그때 우리와는 많이 달랐죠. 우리는 46일을 함께 생활했고 함께 훈련한 시간도 한 달이 넘었어요. 북한의 이분희나 류순복 선수는 중학교 때부터 청소년대회에서 만났던 선수라 그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 애틋했고 나중에 상대로 만났을 때 마음이 아팠죠”
홍차옥의 경기 스타일이 지금의 신유빈과 많이 닮았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다. 승부욕도 남달랐다. 당시 태릉선수촌에서 악명 높았던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에서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홍차옥 때문에 다른 종목 선수들이 단체 얼차려를 받았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아쉽게도 홍차옥의 선수 인생은 길지 않았다. 현정화와 함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여자복식 동메달을 딴 뒤 1994년 2월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3살이었다.
“그때는 여자선수가 20대 중반만 넘어가면 은퇴하는 시대였어요. 지금처럼 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보면 너무 일찍 그만뒀다는 아쉬움도 들어요. 지금은 40~50대 선수들도 올림픽에 나오잖아요. 당시는 원 없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후배들을 보면 조금 더 할 걸이라는 후회도 들죠”
선수생활을 일찍 마쳤다고 탁구인생이 끝난 건 아니었다. 홍차옥은 은퇴 후 엘리트 체육 대신 생활체육에 뛰어들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탁구 클럽’을 만들어 대중화에 앞장섰다.
2013년 경기대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홍차옥은 이듬해부터 서울대 출강을 시작했다. 벌써 10년째 탁구 교양과 전공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탁구 수업은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높기로 유명하다. 학기초 수강신청 ‘전쟁’이 벌어질 정도다.
최근에는 학교뿐만 아니라 소년원 등 다양한 곳을 찾아가 탁구를 가르친다. 프로 탁구 리그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대한탁구협회 경기력 향상 위원도 맡는 등 한국 탁구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선수 은퇴 후 ‘탁구 대중화’에 힘을 썼던 홍차옥은 최근 생활체육으로 큰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많은 분이 탁구를 좋아해 주니까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분들의 응원 덕분에 신유빈 같은 좋은 선수들도 나오고 엘리트 선수들이 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이제는 탁구계가 좋은 후배들이 나올 수 있도록 더 과감하게 투자하고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국 탁구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