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광활한 우주 속 둘 뿐인데, 딸과의 거리는 멀기만…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로빈'
  • 등록 2020-06-11 오전 6:00:00

    수정 2020-06-11 오전 9:00:07

뮤지컬 ‘로빈’ 공연 장면(사진=쇼플레이)
[조용신 뮤지컬 연출가] 코로나19로 인해 인류는 생활 방식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사람들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공중보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와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로빈’은 여러모로 현실을 반추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다중 집객 시설 중 하나인 공연장에 대한 정부의 방역 선제조치의 하나로 이 공연장이 폐쇄되면서 작품의 개막도 두 번이나 연기됐다. 이 작품이 업계에 처음 워크숍으로 소개되고 실제 공연에 오르게 되기까지 2년에 걸친 많은 준비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을 준비한 배우와 스태프들은 기나긴 여정을 끈기있게 기다려 왔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기약 없이 기나긴 여정을 인내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현지은 작가가 구상한 이 작품의 배경은 미래에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를 떠나 10년째 우주 벙커에서 살고 있는 한 가족이다. 중년의 아버지 로빈과 16살인 딸 루나, 그리고 그들의 집사 격으로 청년의 모습을 한 로봇 레온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가족은 지구에서 귀환 신호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우주선의 수명은 10년이기에 그 이후에는 영원히 우주 미아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그 신호는 수명이 다하기 일주일 전에 도착한다.

정태영 연출가의 무대는 마치 우주선 내부에 주거 공간을 얹은 듯한 사이버 느낌의 세련된 홈오피스 같은 디자인으로 채워졌다. 배우가 세 명만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무대 너비가 16m로 중극장 이상의 규모인 대치아트홀에서 세트, 영상, 조명이 어우러진 다양한 효과로 장소의 분할과 시간의 흐름, 정서의 변화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강소연 작곡가의 대중적이면서도 캐릭터와 드라마 흐름이 적재적소에 들어맞는 음악들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이틀롤이기도 한 아버지 로빈의 캐릭터였다. 그는 지구 귀환 일주일을 앞두고 기쁨도 잠시, 건강 악화로 일주일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홀로 남겨질 딸을 걱정하며 자신의 외모와 기억, 감정까지도 완벽히 복제해 사이보그를 남겨두려는 부정(父情)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 역시 10년전 원래 인간 아버지였던 사람을 복제한 사이보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휩싸이는 반전을 선사하며 그동안 사춘기가 되어버린 딸과 소통이 부족했던 이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한 애정 부족으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울림을 줬다.

실제로 아버지이기도 한 정상윤 배우의 진심어린 모습이 대화, 독백, 노래를 오가며 캐릭터를 돋보이게 했다. 최미소 배우는 6살까지의 기억과 추억으로 우주선에서 고립된 채 10년을 살아가며 상상력을 극대화 시켜 이를 소설로 쓰고 있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섬세하면서도 냉소적인 루나를 잘 표현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우리는 과거에 자유로웠던 시간을 떠올리며 쉽게 추억에 빠지고 있다. 우리의 행복은 어쩌면 과거에 있었으며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잘 이겨내고 다시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보다 많은 사랑을 나누고 보람 있게 그 시간을 살아갈 것임을 다짐하게 된다. 뮤지컬 ‘로빈’을 통해 이 시대를 다시 돌아보며 기다림을 인내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조각하고 상상해오는 일상을 볼 수 있었다.

뮤지컬 ‘로빈’ 공연 장면(사진=쇼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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