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묻지마 채권 2000억원 언제 찾아갈지 ‘묻지마’

IMF때 3조8000억 발행 자금출처 조사 면제 혜택
상속·돈세탁 수단 ‘인기’ 만기돼도 1961억 안찾아 프리미엄 20~30% 붙어
  • 등록 2006-10-27 오전 10:57:35

    수정 2006-10-27 오전 10:57:35

[조선일보 제공] 서울 명동의 채권중개업자 A씨는 지난 9월 중순 단골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흔히 ‘묻지마 채권’으로 불리는 비실명(非實名) 채권을 5억원어치 구해 달라는 의뢰였다. A씨는 중간 수집상(속칭 ‘나까마’) 등을 통해 몇몇 자산가와 접촉, ‘물건’ 구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거래는 불발됐다. 매도자측에서 채권 액면가의 40%에 달하는 프리미엄(금리웃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올 들어 4명의 고객으로부터 묻지마 채권 의뢰를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약2000억원어치의 묻지마 채권이 상환되지 않은 채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다.



◆찾아가지 않은 채권 1961억원어치

정부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재원 마련을 위해 자금출처 조사 면제 혜택을 주며 3조8735억원어치 비실명 채권을 발행했고, 사업가·고소득 전문가·거액 상속자 등 자산가들이 매입했다. 이 채권은 2003년 12월 말 모두 만기가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현금으로 찾아가지 않은 금액이 1961억원에 달한다. 채권 상환 업무를 담당하는 한 증권사 직원은 “작년 이후 1000만원짜리 소액권이 아주 가끔 들어오는 것 외에는 거의 상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속·증여세 회피, 돈세탁 수단으로 인기

‘묻지마 채권’ 중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과 고용안정채권은 현재 채권을 보유하더라도 이자가 전혀 지급되지 않는 데다 채권 운용기간(만기 5년)에 나왔던 이자마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증권금융채권은 2008년 8월까지는 운용기간에 나온 원리금을 지급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원금만 보장받는다.

묻지마 채권이 이자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종적을 감출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는 이유는 무얼까. “K씨는 20억원 상당의 증권금융채권을 24억6000만원에 샀다. 채권 상환시 받을 수 있는 원리금보다 23%의 프리미엄을 더 얹어 주고 구입한 것이다. 그러나 K씨는 자녀에게 물려줄 50억원 가운데 20억원을 ‘묻지마’ 채권으로 바꾸면서 30억원 초과분(20억원)에 대한 상속세 50%(10억원)를 내지 않게 됐다. 결국 K씨는 절세금액 10억원에서 채권 프리미엄(4억6000만원)을 뺀 5억4000만원을 절약한 셈이다.” 한 시중은행 재테크팀장의 설명이다. 묻지마 채권은 상속·증여세 회피용은 물론 비자금이나 정치자금 세탁용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전했다.

◆채권가격+20~30% 웃돈 붙여 거래돼

묻지마 채권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이자 등 수익성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 상환금액(채권가격)에 20~30%의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되는 게 보통이다. 예컨대, 증권금융채권(원리금 1억3000만원짜리)의 시중 가격은 1억5000만원 정도. 채권중개상 B씨는 “상속·증여세의 최고세율인 50%에 비하면 프리미엄이 싼 것 아니냐”며 “이 정도의 차익을 노리는 고객들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채권중개상 C씨는 “묻지마 채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약 30억~50억원 규모의 채권을 필요로 하는데 5억~10억원씩 쪼개서 여러 군데에서 거래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2000억원 상당의 묻지마 채권 상환이 원금을 돌려주는 마지막 시점인 2008년쯤에 쏟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채권중개상 B씨는 “돈을 찾아가도 조사를 안 하겠다고 하지만 누가 찾아갔는지 실체가 드러나는 게 부담스러워 계속 채권만 들고 있는 고객도 있다”며 “고객들 중에는 현 정권이 끝난 뒤인 2008년에 채권을 내놓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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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채권’이란 정부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난 극복을 위한 재원 조달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발행한 ‘비실명(非實名) 채권’이다. 이 채권을 구입한 자금은 누구든 출처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묻지마 채권’이란 이름이 붙었다. 당시 한국증권금융, 중소기업진흥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이 증권금융채권,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고용안정채권으로 총 3조8735억원어치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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