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절실함·영악함' 아쉬웠던 한일회담

정세현 전 장관 '자국중심 외교' 당부하며
과거 절실함·영약함으로 美 설득한 사례 소개
한일회담선 일본 정부 설득 못해 '빈손외교' 평가
野도 국익 생각한다면 한일관계 정략적 활용 말아야
  • 등록 2023-03-29 오전 4:00:00

    수정 2023-03-29 오전 4:00:00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얼마 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한 명분은 정 전 장관이 최근 출간한 ‘정세현의 통찰’에 대한 대담을 나누는 것이었지만 필자의 내심은 ‘한반도 현인’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정 전 장관에게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북한 관계에 대한 해법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이 책을 통해서나 인터뷰를 통해서 꼭 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단순히 남북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 ‘자국중심 외교’를 하라는 당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두 가지 예를 들었다. 2000년대 초반 개성공단 사업을 시작할 때, 조명균 당시 교류협력국장(전 통일부 장관)이 미국 상무부를 3번 찾아가 동의를 얻어낸 일을 삼국지에 나오는 ‘삼고초려’에 빗댔다.

두번째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나 100분의 회담 끝에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인 북한과 대화하고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하도록 한 일이다. 정 전 장관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한다.

정 전 장관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체면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두번이고 세번이고 찾아가고, 읍소해서라도 설득하는 것이 외교안보 당국자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가 또 하나 강조한 것은 국내 여론을 외교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과거 정 전 장관은 미국이 한국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반미 여론이 높아질 것이고, 이런 상황이 미국에 유리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을 설득했다고 했다. 절실함과 함께 영악함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이런 원칙이 잘 적용됐는지 따져보자. 이번 회담은 우리가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를 막아온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 정부가 불편하지 않게 선제적으로 풀면서 성사가 됐다. 당연히 일본의 화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과도 일본 전범기업들의 미래 파트너십 기금 참여도 하지 않았다.

과연 우리 외교 당국자들은 절실함을 갖고 일본 정부를 설득했는지 궁금하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이 원칙이다. 우리 정부는 삼고초려를 하든, 젖 먹던 힘을 다하든 일본 정부를 설득해 냈어야 했다. 이런 결과를 갖고 오면 국내 여론이 어떻게 반응할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면 일본 정부를 협박하는 영악함을 보였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고 그 결과는 빈손외교, 굴욕외교란 말로 남겨 됐다. 이번 일이야 다 끝났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내달 있을 한미정상회담과 그 후에 있을 여러 외교 현장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번은 실수지만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도 꼭 한마디해야겠다. 한일관계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풀지 못하고 회피했던 일이다. 국익을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한일 관계를 복원시키려는 것에 대해 돕지는 못할 망정 딴지는 걸지 말아야 한다.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회견을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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