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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끈적끈적한 물가를 볼수록 90세 노(老)교수의 한탄이 자꾸 떠오른다.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는 넉 달 전인 지난해 말 인터뷰에서 ‘왜 물가가 안 떨어지냐’는 질문에 미국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리는 1950~1960년대를 대뜸 거론했다. 당시와 같은 민간의 자생적인 혁신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미국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20.2%를 기록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2분기 때는 134.8%였다. 이 수치가 120%를 꾸준히 넘긴 것은 미국 역사상 2020년 이후밖에 없다. 1960년대 줄곧 30%대였다는 점은 요즘 재정 의존도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의회가 잊을 만하면 벌이는 떠들썩한 부채 한도 상향 협상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이 법으로 정한 부채 한도를 넘어서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시장 인사들은 거의 없다. 부채 협상은 기축통화 특권을 등에 업고 합법적으로 무한정 돈을 쓰겠다는 확인 절차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이참에 한도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번 은행 위기에서 정부가 사실상 모든 은행의 예금을 인수하는 식으로 사태를 봉합하는 것도 이런 시류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미국이어도 흥청망청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다. 달러화가 당장 무너지는 최악 시나리오는 없겠지만, 미국발(發) ‘중금리 중물가’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는 힘을 받고 있다. 2010년대 ‘저물가 저금리’와는 환경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하물며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계에 있는 한국은 이를 딴 세상 얘기처럼 여기면 안 된다. 한국이 돈을 막 푼다면 후유증이 더 클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