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아무도 예상치 못한 AI 붐에 대비한 '이 사람'[파워人스토리]

창립 40주년 델, AI 열풍에 주가 2배 뛰어
혁신 이끈 마이클 델 CEO 억만장자 등극
PC→AI 서버 기업 변신…체질 개선 성공
비상장 전환, 빅딜…위기 때마다 승부수
  • 등록 2024-12-23 오전 5:00:00

    수정 2024-12-23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전 세계적 인공지능(AI) 열풍이 확산하면서 기존 산업 구조는 뒤집혔다. 세계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인텔마저도 고꾸라질 만큼 AI 시대 흐름에 잘 올라타느냐 여부가 기업의 명운을 갈랐다. 월가에선 AI 대장주인 엔비디아와 함께 주목받는 AI 기업이 있다. ‘델 테크놀로지스(Dell Technologie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델은 이제 단순한 개인용 컴퓨터(PC) 공급자가 아니다. 엔비디아와 인텔이 만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가속기 등을 활용해 AI용 데이터센터와 서버를 구축하는 AI 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AI 열풍에 힘입어 델의 주가는 올 들어 50%가량 뛰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델은 1990년대 중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PC 제조업체에서 180개국에 진출한 전 세계를 아우르는 AI 서버 기업으로 변모했다”며 “마이클 델 창업자가 40년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AI 열풍에 대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델 테크놀로지스의 마이클 델 CEO(사진=AFP)
90년대 PC 기업에서 ‘AI 서버’ 기업으로 변신

델의 AI 기업으로 변화는 창업자 마이클 델(59) CEO의 비전과 리더십 덕분이다. 의사가 되길 원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텍사스대에서 의예과 공부를 했던 그는 1984년 19세 때 기숙사에서 업그레이드된 PC를 판매하면서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4년 뒤 델을 뉴욕증시에 상장시킨 후 27세 때 미 경제전문지 포춘의 500대 기업인에 최연소 CEO로 등극했다. 또 그는 36년째 델의 CEO로 재직하며,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에 이어 미국 대기업에서 두 번째로 오래 재직한 CEO로도 알려졌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그는 창업 이후 꾸준한 혁신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켰다. 사업 초기부터 하드웨어뿐 아니라 미래 기술을 대비한 전략을 세워 델을 단순한 PC 제조업체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 저장장치(스토리지), 서버 인프라, AI 관련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 IT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델의 변신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1990년대 PC 시장을 지배하던 델은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저가 PC 확산과 스마트폰의 등장에 발목을 잡혔다. 결국 델 CEO는 창업 20년 만인 2004년 CEO직에서 물러났고 3년 뒤 복귀했지만, PC 시장의 성장 둔화와 새로운 경영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델 CEO는 회사를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단기적인 성과를 추구하기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포부에서다. 2013년 당시 그의 개인 자금 40억 달러를 포함해 총 249억 달러 규모 자금이 투입됐다. 그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장기적 비전을 설득했고, ‘기업사냥꾼’으로 불린 칼 아이칸을 물리치고 경영권을 지켜냈다.

또 다른 승부수는 2015년 스토리지 세계 1위 업체인 EMC ‘빅딜’이다. 인수를 위해 약 670억 달러를 쏟아부었는데 당시 기술기업 간 최대 규모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델은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AI 관련 기술을 강화하며 AI 기업으로 변신할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월가에선 그의 성공 가능성에 암울한 전망을 쏟아냈지만, 델을 주식 시장에 5년 만에 재상장시켜 그 예측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델 테크놀로지스의 마이클 델 CEO(사진=AFP)


“AI 초기 도입 단계, 폭발적 성장할 것”

현재 델 CEO는 델 지분을 약 47%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자산에서 핵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델 CEO는 AI 열풍에 힘입어 올해 개인 자산 기준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1일 기준 델 CEO는 약 1210억 달러의 자산으로 젠슨 황(1180억 달러)엔비디아 CEO보다 앞선 세계 부호 순위 12위에 올랐다.

델 CEO가 리더로서 헌신과 강인한 정신으로 조직을 이끈 결과다. 그의 친구인 마크 베니오프 세일스포스 CEO는 “마이클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델을 아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겉으로 온화해보이지만 속엔 레슬러와 같은 투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기업가로서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모습이 두드러져 오로지 비즈니스에만 집중하는 ‘뚝심’도 높이 평가된다. 델 CEO는 최근 인텔의 몰락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 언급을 피했으며, 조만간 들어설 트럼프 2기의 친기업 규제 환경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정치 이슈엔 관여하지 않는다”고 미소로 대신했다.

델 CEO의 분신과도 같은 델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AI 모델 훈련과 데이터 저장을 위한 고성능 서버와 스토리지 솔루션 공급으로 수익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델의 서버 관련 매출은 지난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58%, 2분기엔 80% 증가했다. 오픈AI가 챗GPT-4o를 훈련할 때 쓴 데이터양이 1만페타바이트인데, 델은 지난 2년간 총 12만 페타바이트의 스토리지를 판매했다. 이 기간 델의 AI 서버 고객은 30~40개 수준에서 현재 2000개로 늘었고, 델 CEO는 “앞으로 몇 분기 안에 4000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델은 일론 머스크가 작년에 창립한 AI 스타트업 xAI의 세계 최대 규모 AI 슈퍼컴퓨터로 꼽히는 ‘콜로서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델 CEO는 “AI 도입이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본격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하키스틱’ 성장 곡선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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