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조각투자 혈맹 맺자”…증권사, 치열한 ‘물밑경쟁’

STO 법안 처리 늦어지자, 조각투자로 선회
조각투자 몸풀기 이후 STO 시장 선점 취지
하반기 부동산·미술품 ‘쪼개기 투자’ 잇따라
금감원 10일 설명회 “상품성·리스크 함께 봐야”
  • 등록 2023-08-03 오전 5:30:00

    수정 2023-08-03 오전 5:30:00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지금 여러 증권사에서 조각투자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이른바 ‘혈맹 제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물밑 신경전이 상당합니다.”

한 조각투자 업체 대표는 기자와 만나 “하반기에 새로운 조각투자 시장이 열릴 것”이라며 준비 상황을 귀띔했다. 토큰증권발행(STO) 관련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증권사들이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조각투자 시장에 뛰어들 전망이다. 당장 수익이 되지는 않지만, 미래 먹거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여의도 증권사 전경. (사진=이데일리DB)


하반기 조각투자 상품 잇따라 출시

2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006800),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005940), 하나증권, 키움증권(039490), 대신증권(003540), SK증권(001510), 교보증권(030610) 등은 최근 조각투자 업체들과 업무협약(MOU) 등을 맺었다. 논의 중인 조각투자 서비스는 미술품, 음악저작권, 부동산, 명품·수집품, 탄소배출권, 한우, 귀금속까지 다양하다.

애초 증권사들은 금융위원회가 올해 2월 STO 정책을 발표하자 STO 서비스 검토에 본격 나섰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8일 STO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현 국회 상황에서 STO 법안 처리가 총선 전에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증권사들은 STO 법안 처리에 앞서 샌드박스를 통해 조각투자 서비스에 본격 뛰어들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각투자와 STO가 서비스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며 “법안 처리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몸풀기’ 차원에서 조각투자를 먼저 시작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STO에 진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조각투자와 STO 모두 부동산·미술품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소액 쪼개기 투자를 하는 것이다. 다만 현행 조각투자는 한 회사가 상품의 발행·유통을 함께 맡아서 할 수 있다. 한시적으로 규제샌드박스를 적용받는 기간에 이를 허용했다. 반면 STO는 이해충돌 우려를 고려한 금융위의 정책 기조에 따라 발행·유통을 분리할 예정이다.

이 같은 새로운 시장을 앞두고 그동안 증권사와 조각투자 업체와의 협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첫째는 증권사가 STO 등 자체 플랫폼을 만들고 조각투자 업체와 협업하는 방식이다. 미래에셋증권 등 상당수 증권사가 리스크 등을 고려해 인수보다는 협업 방식을 택했다. 두 번째는 증권사가 조각투자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앞서 대신파이낸셜그룹은 지난 3월에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카사를 인수했다. 자금 부담이 있지만 선제적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한 게 장점이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상품성 살리되 부실 우려 없어야”

이 장점을 살려 카사는 오는 10일 대신증권 계좌 오픈을 시작으로 다음 달에 공모를 시작한다. 증권 계좌를 통해 강남, 여의도 등의 부동산에 ‘쪼개기 소액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홍재근 카사코리아 대표는 “고객 경험이 생기면 시장은 만들어진다”며 “장기적으로 1조원 정도의 규모로 부동산 조각투자 상장 시장을 확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앞으로 루센트블록, 펀블, 스탁키퍼, 테사, 서울옥션블루, 투게더아트, 열매컴퍼니 등도 잇따라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귀금속 등 실물 원자재 기반 조각투자를 준비 중인 아이티센은 하반기에 샌드박스 신청을 할 예정이다. 하반기 금융위 심사에 따라 조각투자 상품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는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10일 증권사, 조각투자 업체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개편된 증권신고서 서식, 투자자 보호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강찬영 중국문화예술유한공사 부이사장은 “조각투자와 STO는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도”라며 “새로운 시장의 상품성을 살리면서 투자자 보호 방안도 완비해 부실 우려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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