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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폭락’ 다음 차례는 팩웨스트?
4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86% 하락한 3만3127.74에 마감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72% 떨어진 4061.22를 기록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0.49% 내린 1만1966.40에 거래를 마쳤다. 이외에 러셀 2000 지수는 1.18% 하락한 1718.81을 나타냈다.
3대 지수는 장 초반부터 은행주 폭락에 약세를 보였다. 퍼스트 리퍼블릭의 다음 차례로 꼽히는 팩웨스트 뱅코프의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50.62% 폭락한 3.1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역대 최저다. 장중 2.48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이 중소 지역은행은 퍼스트 리퍼블릭 위기설이 나올 때부터 함께 이름이 나왔던 곳이다.
이날 낙폭이 유달리 컸던 것은 팩웨스트가 자산 매각을 포함한 전략적 옵션까지 검토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 리퍼블릭의 붕괴와 비슷한 흐름이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
팩웨스트는 성명에서 “은행과 이사회가 계속해서 전략적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27억달러 규모의 매각을 진행하고 있고 여러 잠재적 파트너·투자자와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27억달러 규모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매각예정자산(held-for sale)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블룸버그는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을 인용해 “팩웨스트가 매각을 포함한 전략적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은행 분리, 매각, 자본 조달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팩웨스트는 “퍼스트 리퍼블릭이 JP모건에 매각된 이후에는 비정상적인 예금 흐름이 나타나지 않았고 대규모 뱅크런(대규모 예금 유출)은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투자자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퍼스트 리퍼블릭 인수를 확정한 이후 컨퍼런스 콜에서 “이번 위기는 거의 끝났다”고 말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불안감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 코메리카, 자이언스의 주가는 각각 38.45%, 12.26%, 12.05% 떨어졌다. 특히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거점으로 한 웨스턴 얼라이언스는 회사 전체 혹은 일부 사업의 매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가 나오면서 한때 60% 이상 폭락했다가, 회사 측이 이를 공식 부인하면서 낙폭을 줄였다. 웨스턴 얼라이언스는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는 5.73% 급락했다.
JP모건(-1.40%), 뱅크오브아메리카(BoA·-3.12%), 씨티그룹(-1.69%), 웰스파고(-4.99%) 등 미국 4대 은행 주가 역시 모두 내렸다. 중소 지역은행들이 규모는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은행권이 사실상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는 운명 공동체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대형 은행들도 타격이 있을 수 있는 탓이다. ‘월가 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캐피털 회장은 CNBC에 나와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하하기 전까지는 지역 은행 위기는 이어질 것”이라며 “더 많은 은행들이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위기감이 만연하자 뉴욕채권시장에서 국채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3.657%까지 떨어졌다. 30bp(1bp=0.01%포인트) 가까이 급락한 수준이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3.296%까지 내렸다. 12bp가량 떨어진 수치다.
미국 노동시장 과열이 다소 식고 있다는 지표도 나왔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4만2000건으로 전주 대비 1만3000건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3만6000건)를 상회했다. 실업수당을 많이 신청한다는 것은 그만큼 해고가 많고 노동시장이 식고 있다는 뜻이다.
은행 위기가 지속하고 노동시장이 둔화하자 연준이 당장 오는 7월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까지 퍼졌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이날 오후 현재 연준이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25bp 인상할 확률을 57.0%로 보고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은 제롬 파월 의장을 믿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전날 연준에 이어 기준금리를 25bp 인상했다는 소식 역시 전해졌다. ECB는 “인플레이션 전망치가 너무 높게 너무 오래 지속하고 있다”며 “높은 물가 상승 압박이 지속하면서 금리를 25bp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며 “오늘 가진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했을 때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는 전거래일과 비교해 0.51% 하락했고,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0.58% 내렸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지수는 1.10% 떨어졌다.
주목되는 것은 시가총액 최상위권에 포진한 빅테크들이 줄줄이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이날 장 마감 직후 실적 발표를 통해 올해 1분기(회계연도 2분기) 주당순이익(EPS)이 1.52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1.43달러)를 웃돌았다. 매출액은 948억4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929억6000만달러)를 상회했다.
이는 아이폰 판매 호조 덕이다. 아이폰 매출액은 513억3000만달러로 전망치(488억4000만달러)를 큰 폭 웃돌았다. 맥(Mac)과 아이패드는 다소 부진한 가운데 아이폰이 호실적을 이끈 것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애플은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이다. 그만큼 시장 영향력이 큰 회사다. 게다가 지난주 다른 빅테크들이 호실적을 거둔 이후 애플이 화룡점정을 찍은 격이어서, 은행 위기로 눌린 투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제유가는 4거래일 연속 또 떨어졌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0.06% 하락한 배럴당 68.56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3월 20일 이후 최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