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80억 인구의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나눈다고?

1940년대 만들어진 성격유형지표 MBTI
우리나라에서만 유행…채용 전형 참고도
신뢰도·타당성 낮아 학계 일각에선 부정
16개 유형에 스스로 가두거나 타인 단정 말아야
  • 등록 2023-11-13 오전 6:06:06

    수정 2023-11-13 오전 6:06:06

[이데일리 피용익 디지털콘텐츠부 에디터] 몇 달 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인터뷰했다. 김 전 위원장은 MBTI를 묻는 질문을 못 알아듣고 ‘MB’(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답을 해 화제가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치인이 MBTI를 모를 수가 있느냐’ ‘코미디 프로그램이라서 웃기려고 한 말씀 같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언제부턴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를 모르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아예 자기 소개를 하면서 MBTI 유형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종종 헷갈리는 16가지 성격 유형을 어떻게 그렇게 잘들 꿰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MBTI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와 캐서린 쿡 브릭스가 1944년에 고안한 성격유형지표다. 에너지 방향(외향·E 또는 내향·I), 인식 형태(감각·S 또는 직관·N), 판단 기준(사고·T 또는 감정·F), 생활 양식(판단·J 또는 인식·P)을 구분하는 4가지 선호 지표를 토대로 사람의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한다.

(표=한국MBTI연구소)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안고 산다. 또 타인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MBTI는 일견 이러한 궁금증을 일목요연한 설명으로 해소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전 세계 80억 인구의 제각각 다른 성격을 16가지 유형만으로 분류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예컨대 나의 MBTI 유형인 ISTJ는 ▲조용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다 ▲근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계획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등의 특징으로 설명된다고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또한, 나는 ENFP(열정적이고 따뜻하며 상상력이 풍부하다) 같은 면도 있고, INFP(감수성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다)스러운 모습도 있다.

특히 사람은 환경에 따라 ‘가면’(페르소나)을 바꿔 쓴다. 집에서는 외향적인 아이가 학교에 가면 내향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계획적인 직원이 친구를 만나면 즉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MBTI 검사는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아닌 평소 익숙한 내 모습을 체크하도록 돼 있지만, 페르소나가 강화되면 원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일부 심리학자들은 신뢰도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MBTI 검사 자체를 부정한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MBTI가 유행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약식 MBTI 검사를 해본 게 전부다. 가뜩이나 신뢰도가 낮은 검사를 엉터리로 하고선 성격이 이렇다 저렇다라고 단정하는 셈이다. 채용 전형에서 I(내향적) 유형은 탈락시킨다는 기업도 있다고 하니 MBTI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의 성격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혹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특정 성격 유형에 나 스스로를 가둬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MBTI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융 역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성격의 만남은 두 화학 물질의 접촉과 같다. 만약 어떤 반응이 일어나면 둘 다 변형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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