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탈중국' 거점 떠오른 韓, 경직된 노동법 고쳐 투자 매력 더 높여야

[외국인 직접투자 사상 최대②]
글로벌 공급망 개편서 '직접투자' 수혜…그린필드 투자도 최대
美 IRA수혜 '얼라인쇼어링'·탈중국에 韓 제조 기지로서 부각
"엄격한 노동규칙, 중대재해처벌법 등은 韓 투자 망설이는 요인"
  • 등록 2023-11-16 오전 5:00:00

    수정 2023-11-16 오전 5:00:00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반도체용 포토레지스트 글로벌 1위 기업, 일본 도쿄오카공업(TOK)은 7일 한국에 투자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가 인천에 70억엔(약 600억원)을 들여 건설한 검사센터는 이달중 착공해 2026년 상반기부터 본격 가동된다. 도쿄오카공업은 2012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에 포토레지스트 공급·판매기지를 확충하기 위해 2012년 인천에 자회사인 도쿄오카공업첨단소재를 설립한 후 그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화두가 ‘비용 절감’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탈(脫)중국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의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탈중국·IRA수혜·신재생


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FDI) 신고금액은 총 239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실적이다. 실제 투자가 집행된 금액도 전년동기대비 20.2% 늘어난 139억2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코로나19 대유행기였던 2020년 208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한 후 △2021년 295억달러 △2022년 305억달러로 해마다 역대 최대치를 경신해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외국인직접투자 규모는 다시 한 번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관측된다. 회계연도 마감을 앞두고 4분기 투자 집행이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미국 IRA와 탈중국화의 수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과거엔 아시아권 진출시 중국을 최우선 고려해 왔지만, 이제는 한국, 일본을 선택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IRA법 시행을 전후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IRA법에 따르면 배터리 광물 가공 기업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40%의 광물을 조달해야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반도체 등 제조업이 발달해있고 미국과 FTA도 체결한 우리나라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다는 애기다.

세계 최대 코발트 채굴 업체인 중국 화유코발트는 상반기 LG화학, 포스코퓨처엠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국내에 전구체 공장 등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 중국 업체들의 확보한 원료를 내재화할 수 있고, 중국 기업들은 미국과 FTA가 체결된 한국에서 원료를 가공, 생산해 IRA의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가거나 중국 정부와 연관된 기업들을 규제하고 있다”면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내 기업들이 경영권을 확보하는 형태로 합작회사 설립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등 미국 동맹국 외에도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멕시코도 외국인직접투자 수혜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멕시코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290억달러로 전년동기대비 41%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에선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가 위해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으나, 미국에 직접 진출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며 “우리나라처럼 ‘얼라이쇼어링’(Ally-shoring, 동맹국 내에 공급망 구축)이나, 멕시코처럼 ‘니어쇼어링(Near-shoring,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에 공급망 구축)’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틴 행켈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독일에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잘 대처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고, 최근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을 고려해 다각화에 대한 기업들의 문의가 많아졌다”며 “한국에 투자를 늘리고 중요 고객과 지리적인 거리를 줄이려는 바이오제약, 반도체, 자동차 분야의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도 외국인 투자가 활발한 편이다. 금액만 따져보면 크지 않지만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부 관계자는 “풍력 분야에서 해외 기업들의 한국 투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인베스트 코리아 서밋에서 해럴드 링크 비그림 파워(B.Grimm Power) 대표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사진 = 산업부제공)


◇ “탈중국에 일시적 수혜냐, 지속 가능성 있냐”가 관건


글로벌 공급망 개편에서 우리나라에 직접 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특히 단순한 인수합병(M&A)을 위한 투자보다는, 부지를 확보하고 생산시설을 직접 짓는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가 올해 3분기 누적 167억9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다. 그린필드 투자는 전체 외국인직접투자(239억5000만달러)의 70.1%를 차지하고 있다. 김태형 인베스트코리아 대표는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그린필드 투자가 다수 유입돼 국내 산업의 공급망 강화, 신규 고용창출 등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직접투자 증가세가 지속 가능하려면 규제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준석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국인 직접투자 확대는 탈중국화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장기간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내 공급망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중국에서 이탈하거나 리쇼어링하는 생산시설에 굉장히 배타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데 포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력난,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켈만 대표는 “한국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한국인들은 대기업 근무를 선호하기 때문에 숙련된 직원을 찾는 게 쉽지 않다”면서 “대학교 외에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교육시스템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엄격하고 경직된 노동법, 중대재해처벌법 등도 한국 투자를 재고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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