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는 맥주로 치면 물과 같아 어떤 대역을 쓰느냐에 따라 통신 품질은 물론 투자비가 달라지죠. 그래서 경매를 하면 황금 대역을 차지하기 위한 ‘쩐의 전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신 3사 모두 쓰던 대역의 이용기간을 연장하는 재할당이어서, 과거 경매에서 보던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세 기간이 끝났으니 전세 재계약을 맺는 것에 가깝습니다.
모호한 전파법 시행령이 혼란 불러
3G·LTE 주파수 재할당에서 임대인 격인 정부와 임차인 격인 통신사들이 ‘전세금’을 두고 갈등을 벌이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차이가 너무 큰 게 문제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거 경매대가를 기준치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통신사들은 과거 경매대가는 빼야 한다는 입장이죠. 정부는 국가 자원인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를 매기는데 과거의 이용가치를 배제할 순 없어 과거 경매가를 반영해야한다는 입장이고, 통신사들은 과거 막 부동산 개발이 이뤄질 때의 가치와 현재 다른 곳의 개발(5G 투자)이 이뤄지는 상황은 다르니 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같은 혼란이 더 커진 이유는 전파법 시행령의 모호한 조항 때문입니다. 전파법 14조에서는 ①‘할당대가 산정기준은 별표3과 같다’ ②‘다만, 과거 경매방식으로 할당된 경우에는 당시 대가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기업들은 ①의 방식을, 정부는 ②의 방식을 지지하는 것이죠.
정부와 업계 기준을 적용해 보면 재할당 대가는 정부 최대 4조 원, 업계 1.6조 원 정도로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국감에서도 이처럼 들쭉날쭉한 할당대가에 대해 김영식·황보승희 의원(국민의힘),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문제를 제기했죠. 김 의원은 과거 경매대가를 최근 것(3년 이내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용도)만 반영하는 전파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금요일 토론회도 열었습니다.
또, 지난 목요일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주파수 재할당 대가 전망을 질의하는 등 시장의 관심도 뜨거웠죠. 통신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주주들의 관심도 크기 때문입니다.
재할당 대가, 금액보다 원칙이 중요하다
이달 말 정부가 발표할, 재할당 대가 산정방식은 예측가능성이 중요하고, ICT 생태계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다뤄지길 바랍니다.
기준이 불명확하기에 재할당대가를 4조로 하든, 1.6조로 하든 혼란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정부 로직의 기준을 세세하게 공개하고, 현재 로직의 한계(법적 논란 등)를 인정하며, 그럼에도 이런 로직을 택한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불확실성을 바꿀 제도 개선 계획과 5G 투자 활성화를 위한 대안도 함께 설명됐으면 합니다.
기재부 입김 최소화되길…산업 승수 효과 고려해야
과기정통부가 이런 기준을 세우는데, 재정 수입 확대에 골몰하는 기획재정부 입김이 최소화되길 바랍니다.
변재일 의원은 국감장에서 “기재부 압박으로 IT 분야에 큰 짐을 지게 될 것 같으니 예측 가능한 시행령을 만들어서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2022년까지 5G 전국망(85개 시도 읍면동)이 구축되면 5G 전환이 정책 목표일텐 데 그러면 기존 주파수들은 가치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라고 질의했습니다.
혹시 주파수 재할당대가가 기재부가 원하는 수준보다 적어 감사원 감사를 받을까 걱정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소신 행정’을 해주길 바랍니다. 정부의 재정 수입 확대만을 위해 여러 논란을 애써 무시하고 기업들로부터 재할당 대가를 무조건 높여 받는 게 오히려 감사 지적 사항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통신사들이 재할당 대가로 경영에 불확실성이 커지자 속이 타는 건 삼성전자 등 통신 장비 및 통신 공사 업계입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속에서 산업 승수 효과가 큰 주파수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3G·LTE 주파수는 합리적으로 주고 대신 5G 주파수 경매 시기를 앞당겨 통신사의 설비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