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쌀값이 계속 하락하자, 정부가 고심에 빠졌다. 별도의 시장격리 없이도 올해 안정적으로 쌀값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던 정부 예측이 완전히 어긋났기 때문이다.
|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29일 충남 예산통합 RPC를 방문해 산지 쌀 수급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사진=농식품부) |
|
2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쌀값이 하락함에 따라 쌀값 안정을 위한 추가 대책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지난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kg당 19만5832원까지 내려갔다. 지난해 수확기 평균 쌀값(20만2797원)과 비교하면 6965원(-3.4%) 하락했다. 쌀 가격은 지난해 수확기인 10월 5일 80kg 기준 21만 7552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정부는 쌀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로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재고 증가를 꼽았다. 실제로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지난해 수확기에 농협 RPC와 벼 건조저장시설(DSC) 등이 매입한 벼는 200만1000t으로 전년동기(165만8000t)대비 20.7% 늘었다. 재고량도 20만t 가량 늘어났다. 쌀값 하락을 우려한 중소 정미공장 등 민간 RPC에서 쌀을 매입하지 않으면서, 농가 물량이 농협으로 몰린 탓이다. 재고 증가에 일부 농협RPC에서 저가 판매에 나서자,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쌀이 사실상 수급균형이라며, 시장격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정부 입장이 난처해졌다. 가격 안정을 위해선 늘어난 재고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해 쌀 생산량은 370만 2000t으로, 신곡 예상 수요량(361만t)보다 9만 2000t(2.5%) 많다. 이는 시장격리 요건(생산량의 3% 이상)을 충족하는 못하는 수준으로, 자칫 시장격리를 했다간 4~5월에는 시장에 쌀이 부족해질 수 있다. 실제 지난해에도 정부가 2022년산 쌀을 45만t 격리하면서 8월에는 쌀이 부족해 공공비축미 5만t을 방출했다.
여기에 정부는 이미 지난해 수확기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두 차례 대책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농식품부는 공공비축미 산물벼(마르지 않은 벼) 12만t을 전량 인수하고 정부 양곡 40만t을 사료용으로 처분했다. 그럼에도 쌀값이 하락하자, 같은 달 29일에는 농협이 보유한 쌀 5만t을 식량 원조용으로 매입하기로 했다. 신곡을 식량 원조용으로 매입한 건 처음이다. 식량원조용 매입 물량은 정부 양곡창고에 보관하지 않고 해외로 즉시 내보내는데, 시장격리와 같은 효과가 있다.
이같은 조치에도 불안심리가 잠재워지지 않으면서 쌀값은 지속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한 민간 RPC 관계자는 “2년전 쌀값 폭락 이후 농가 및 민간 RPC에는 가격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며 “정부에서 초과 생산량에 대해선 쌀을 격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쌀값 방어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여전히 시장 격리 방식은 택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굽히지 않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충남 예산통합 RPC를 방문한 자리에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쌀값 안정을 위한 추가 조치를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올해는 쌀값 안정을 위해 전략작물직불제 확대·개편을 축으로 한 적정생산 대책을 통해 벼 재배 면적을 선제적으로 감축하고, 과학적 수급 예·관측 시스템 운영 등 선제적 수급관리 대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