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대한민국 군대가 다시 한번 내란 사태에 연루되는 참담한 일이 발생했다. 우리는 1993년 하나회 해체와 1997년 5.18 내란사건 재판을 통해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준엄한 징계가 이뤄졌다고 믿었다. 군대가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일 우리가 경험한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계획 수립과 실행 과정에 최고위급 지휘관들의 자발적 참여와 동조, 그리고 묵인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를 옳다고 생각하는 장교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장교 대부분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일을 특정 인맥 장군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일탈적인 개인이 등장하게 되는 구조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의 재발을 막으려면 이러한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인사의 문제다. 현재 장교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관의 평가다. 영관급에서 장군에 이르기까지 직속상관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진급이 결정된다. 군인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진급에 목을 맨다. 이런 상황에서 상관의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 부당한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결정적인 메커니즘이 진급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군 진급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동료와 부하가 참여하는 360도 평가를 활성화하고 장군 진급심사에는 민간전문가가 참여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평가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꼭 필요한 직위에만 관여하고 나머지 지휘관에 대해서는 각 군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의 문민화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명령 복종에 대한 장병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우리 군은 복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교육하는 데는 소홀했다. 위헌적, 불법적, 반인권적, 비윤리적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해서는 안 된다. 부당한 명령에 따를 경우 그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2019년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지난해에 개정된 교재에서는 삭제됐다. 명령의 타당성을 판단할 권한은 지휘관에게만 있고 병사들은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쪽만 맞는 얘기다. 과거에 그랬다 해도 현대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극도로 복잡해진 전쟁 상황에서는 ‘생각하는’ 군인이 잘 싸운다. 주어진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도 있다. 그러나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데 어떤 방법이 타당한지 늘 고민해야 한다. 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절대복종의 맹목적 군인보다 주체적이고 임무중심적인 병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규상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 ‘군인복무기본법’이나 ‘군형법’ 어디에도 ‘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군형법 제44조에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만 존재한다. 차제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부당한’ 명령의 구체적 내용도 적시하고 가능한 사례도 알려줘야 한다. 자신들이 투입된 곳이 국회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부당한 명령’과 ‘복종의 의무’ 사이에서 엄청난 심적 갈등을 겪었을 12월 3일의 젊은 군인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부당한 명령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며 부여된 직책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한 장교들에게는 ‘의무의 방기’에 해당한다. 내란 사태에 연루된 일부 지휘관들이 자신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그들은 자신들이 장교로 임관할 때 했던 바로 그 서약을 위배했다는 점에서 부당 명령 이행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군 일부가 내란 사태에 연루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매서운 눈총을 받고 있다. 다행히 젊은 장병들의 용기있는 늦장 부림 덕분에 물리적 충돌의 파국을 막았다. 많은 국민이 이 점을 높이 사고 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내란 사태의 엄중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자신들은 직접 연류되지 않았으니 잘못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