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서울 남산이 위치한 행정구역은 중구이고, 중구는 서울의 중앙이다. 실제로 수도 서울 한가운데인 ‘중심점’도 남산에 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남산은 남(南)쪽에 있는 산이 아니라, 가운데(中) 있는 중산이어야 한다.
| 남산타워(사진=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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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남산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조선 건국 때로 거슬러간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북현무 북악산과 좌청룡 낙산, 우백호 인왕산, 그리고 남주작 남산을 내사산(한양 사대문 안에 위치하는 네 개 산)으로 삼고 중심에 경복궁을 지었다. 남산은 경복궁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다. 그래서 남산이 됐다.
한양의 안산(案山·집터나 묏자리 맞은편 산)에 해당하는 남산은 국자적 요충지였다. 태조가 나라의 안녕을 빌고자 국사당을 둔 남산에 둔 이유이다. 국사당은 수호 신사(守護 神祠)로서 지은 사당이다. 북악산에 북악 신사(北岳 神祠)와 남산에 목멱 신사(木覓 神祠)가 해당한다.
목멱 신사는 1925년 지금의 인왕산 국사당 자리로 옮겨갔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남산에 신궁(神宮)을 지으려는데 목멱 신사보다 더 높이 지을 수 없어서 옮기라고 한 것이다. 목멱 신사가 옮겨간 터에는 지금의 팔각정이 들어섰다. 팔각정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정으로 지었다. 이듬해 4·19혁명 때 철거됐다가 1968년 팔각정으로 다시 지었다.
남산 정상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다. 연기나 봉화를 피우는 봉수대는 나라에 급한 일이 생기거나 적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오장동, 묵정동, 예장동, 명동, 회현동 등 다섯 방향으로 봉수대가 설치됐다. 남산 북쪽에는 군사가 무예를 닦는 훈련장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통신 시설과 군부대를 품은 것이다.
남산을 달리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다. 목멱 신사가 있어서 목멱산으로 불렸다. 경사(慶)를 끌어오는(引) 산이라는 의미에서 인경산(引慶山)이라고도 했다. 마뫼는 남산의 우리식 표현이다. ‘마파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마는 남쪽을 의미한다. 뫼는 산의 우리 말이다. 그래서 마뫼는 남산이다. 목멱은 마뫼를 이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