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사립대 A교수는 최근 자신이 지도한 학생이 외부 대회 입상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 온 커피를 돌려보냈다. ‘부정청탁’ 의도는 없었겠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다. 지난달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시행 당일 첫 신고가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내용이었다는 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A교수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 대학가의 풍경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학생들은 시끌벅적한 사은회 대신 손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가 하면, 을(乙)의 처지인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줄어들었다. 반면 진로 상담 등을 위해 교수 연구실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지는 등 사제 관계가 삭막해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공익 목적의 외부 강의조차 일일이 학교 측에 보고해야 하는 탓에 일부에서는 또다른 ‘빅브라더’의 출현을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김영란법 취지에 십분 공감하면서 초기 혼란을 잘 극복한다면 한국 사회의 부패 지수가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해득실 차원을 넘어 교수와 학생 간 인간적인 교류마저 제약할 수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권이 지속·재생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법 취지엔 공감하지만 사제간 오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까지 스스로 검열하게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추후 법 개정이나 세부 규칙을 만들어 이러한 불편은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강연이나 자문 등 교수들의 대외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도 생기고 있다.
김영란법은 외부 강의료 상한선을 정해 놓았는데 언론인 및 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직급 구분없이 시간당 100만원이다. 교수들은 외부 강연시 학교 측에 강연 장소와 시간, 주제, 강연료 등을 사전에 제출하고 있다.
보고서에 나타난 강의 대상에 따라 교수 성향을 분류, 정치적 검열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의 한 교수는 “외부 강연 대상이 진보나 보수 등 소위 좌우 기준으로 나뉘는데 보고서의 데이터를 축적하면 개별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며 “최근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파문’처럼 교수 사회에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를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