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조원에 육박한 가계빚을 잡으려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집단대출을 손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부동산업계를 중심으로 집단대출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실수요자의 ‘내집마련’ 기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신규분양‥앞으로가 더 문제
6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 KEB하나·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5월 말 현재 집단대출 잔액은 109조8620억원으로 전달(108조5685억원)에 비해 1조3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은행의 전체 가계대출이 이 기간 3조원 가량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집단대출의 증가속도가 가파른 셈이다.
집단대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이 옥죄기에 나서면서 증가세가 주춤해왔다. 2016년 6월말 12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108조원으로 11%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5월들어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5대 은행 기준으로 집단대출은 전달에 비해 1조3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가계대출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문제는 앞으로다. 4월 조기 대선이 끝나고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건설사들이 신규 분양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 전국 아파트 분양예정 물량은 7만3262가구. 부동산 가격 상승의 진원지인 서울에서만 1만7941가구가 분양에 나서면서 월별 물량으로는 올해 중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5월과 6월 분양 물량을 합치면 10만가구가 넘는 수준이다.
집단대출, 규제의 사각지대
집단대출이 다시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떠오른 것은 규제의 사각지대로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집단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대신 올해 이후 분양아파트의 잔금대출만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상대적으로 상환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분양권 등을 매입하면 대출도 자동 승계하는 구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집단대출은 가계대출이긴 하지만 보증부대출로 은행권의 위험이 크지 않고 건설자금을 대는 일종의 브릿지론 역할을 해 일률적으로 규제잣대를 적용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신규청약이나 입주권 시장으로 실수요자뿐 아니라 투기세력까지 몰리며 과열 양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 규제수위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분양시장은 주택금융의 보증을 받는 구조인데, 투기꾼들이 분양권을 사고팔면서 위험은 떠넘기는 상황이 됐다”면서 “신규 분양시장을 실수요자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하려면 집단대출도 DTI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집단대출 규제 없이는 가계부채 잡기 어렵다
물론 집단대출을 조이면 가계부채가 해소된다는 금융당국의 해법은 실효성을 잃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부동산업계를 중심으로 집단대출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자칫하다간 서민들의 대표적인 내집 마련 루트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 호황이 실수요자 때문인지 갭 투자(시세 차익을 노리고 전세를 끼고 아파트 등을 매입하는 투자)등의 투기적 수요 탓인지도 검증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반기 공급 물량 확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매(분양권 팔기)에 실패한 투기적 수요자가 결국 아파트를 떠안아야 하면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기관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부터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빨라지고 있어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에 긴장의 끈을 더욱 조여야 한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 집단대출
신규 분양 아파트의 입주 예정자가 별도의 심사없이 단체로 금융기관에서 받는 대출. 중도금대출과 잔금대출 등으로 나눈다. 집단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