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조선 시대 홍계관은 신통한 점쟁이였다. 치는 점괘마다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는데, 그 바람에 외려 화가 닥쳤다. 당시 조선의 왕 명종의 눈 밖에 난 것이다. 명종은 혹세무민으로 백성을 속여 잇속을 취한다고 보고 점쟁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 아차산 정상(사진=서울관광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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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명종에게까지 끌려간 홍계관은 시험에 오른다. 명종은 미리 준비한 궤짝에 쥐를 넣어두고서 “몇 마리 있는지를 맞춰보라”고 했다. 홍계관은 “세 마리”라고 대답했다. 궤짝에는 쥐가 한 마리 들어 있었다. 명종은 “점으로 남을 속이더니 나까지 속이려 든다”며 홍계관을 처형하라고 명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홍계관은 억울했다. 다시 점을 쳐보니 한 식경(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살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관리에게 사정해 처형을 늦춘 그 시각, 조정에 있던 명종은 쥐의 배를 갈랐다. 쥐의 배에서는 새끼 두 마리가 나왔다. 쥐와 새끼까지 합하면 모두 세 마리였다. 홍계관이 친 점이 맞았던 것이다.
명종은 처형을 막고자 부리나케 파발을 띄웠다. 형장에 있던 관리는 조정에서 파발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 홍계관을 처형해버렸다. 홍계관의 부탁을 받고서 한 식경이나 처형을 미룬 데 대한 문책을 당할 게 두려웠던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명종은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홍계관이 처형된 산은 지금의 서울 광진구와 경기 구리시에 걸친 아차산이 됐다.
아차산의 유래는 조선의 건국과도 연관돼 있다. 아차산에는 삼국시대 백제가 지은 아단성(阿旦山城)이 있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이름을 이단(李旦)으로 개명하면서 아단산성은 지금의 아차산(阿且山城)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높은 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다른 이름으로 돌려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이단과 아단성의 단이 겹치는 탓에 아단성 이름을 바꾸되 형태가 비슷한 차(且)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아단산이 아찬산이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두 구전으로 내려오는 얘기라서 정사는 아니다. 아차산은 서울을 안에서 감싸는 내사산(북악·남·인왕·낙)과 밖에서 아우르는 외사산(삼각·관악·덕양·용마) 가운데 용마산과 닿아 있다. 아차산 남쪽 기슭으로는 그랜드 워커힐 호텔이 자리한다. 6·25 전쟁 당시 참전해서 전사한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