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애완견 모습을 한 사족보행 로봇이 최근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사람의 형상을 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이 마무리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역할을 해내고 있다. 보행 로봇이 제한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실내외를 오가며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일상 속 상용화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이 따른다.
| 이달 17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 대회’에서 황보제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가 4시간 19분 52초 기록으로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완주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카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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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로봇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황보제민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의 업그레이드 모델 ‘라이보2’가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19분 52초 기록으로 완주했다. 지난 17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 대회’에서다. 사족보행 로봇의 세계 최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로 주목을 받았다.
카이스트는 바퀴 기반 주행 로봇 대비 주행 거리와 운용 시간이 짧아 아직 실내 등 제한적 환경에서만 쓰이는 보행 로봇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라이심(Raisim)’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사, 계단, 빙판길 등 다양한 환경을 강화 학습해 지면 접촉 시 발생하는 주기적인 충격을 견디며 낮은 에너지 손실로 안정적으로 보행하는 제어기를 개발했다. 아울러 힘 투명성이 높은 메커니즘과 함께 얻어지는 지면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보행 효율을 높였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도출하면서 얻은 다양한 조건에서 모듈별로 변화하는 손실 데이터와 측정 방법을 바탕으로, 사족보행 로봇뿐만 아니라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다리와 바퀴가 결합된 휠-레그드 로봇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는 연구실에서 창업한 ‘라이온로보틱스’의 제조 기술이 활용됐고 삼성전자(005930) 미래기술육성센터도 지원했다.
이충인 공동 제1 저자(박사 과정)은 “마라톤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 환경에서 라이보2가 안정적으로 배달과 순찰 등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는 보행 성능을 갖추었음을 보였다”며 “후속 연구로 라이보의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하면서 산악 및 재난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보행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향후 연구 계획을 밝혔다.
| 이달 10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이좡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톈궁(天工)이 참가자들과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사진=VC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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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보행 로봇 연구가 한창이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베이징 이좡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21.09㎞를 완주할 때 전기 휴머노이드 로봇 ‘톈궁(天工)’이 마지막 단계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해 1월 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에 성(省)급 규모의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를 설립하고, 올해 4월 키 163㎝와 몸무게 43㎏로 전기 구동 방식으로 작동하는 톈궁을 선보였다.
보도에 따르면 톈궁은 대회 시작과 함께 참가자들이 달려나가자 옆에서 팔을 흔들며 격려했다. 레이스 후반 많은 선수들이 결승선에 근접했을 때, 톈궁은 약 100m 떨어진 지점에서 트랙에 진입해 선수들이 함께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클로징 페이서(closing pacer·마무리를 위해 보조를 맞춰 걷는)’ 역할을 수행했다.
| 이달 3일(현지시간)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2024 항저우 마라톤’ 대회에서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로보틱스가 선보인 사족보행 로봇 ‘B2’가 참가자들 사이에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사진=중국중앙TV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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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TV(CCTV)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중국 동부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2024 항저우 마라톤’ 대회에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로보틱스가 사족보행 로봇 ‘B2’와 ‘Go2’를 선보였다. B2는 하프 마라톤 마지막 단계에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Go2는 러너들과 함께 달리며 손하트 만들고 악수를 하거나 음악 재생과 음성 안내를 하는 등 정서적 동반자 역할을 했다.
이번 행사에서 사족보행 로봇들은 ‘하프 마라톤 페이서’라고 적힌 풍선을 매달고, 1㎞당 약 9분 24초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참가자들의 달리기 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국제 마라톤 역사상 로봇 페이서가 사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사족보행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조만간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에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봇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러너의 심박수와 온도, 공기질과 같은 요인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 피드백을 제공하는 동시에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로봇 업계 관계자는 “순찰 로봇이 경주 경로를 따라 자율 주행을 하면서 안전 모니터링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비정상적인 군중 이동이나 긴급 상황 등을 감지해 안전 요원에게 신속한 대처를 요청할 수 있다”며 “혼잡한 행사장에서도 카메라와 센서로 사람들의 상태를 식별해 즉각적인 응급 처치가 필요한 경우 제세동기와 같은 구급 용품을 갖춘 로봇이 제때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