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金은 없다…'공정성·테크'로 韓양궁 이끄는 정의선[파워人스토리]

정의선 현대차 회장, 대한양궁협회 14대 회장 추대…6연임
"성적 기대에 못 미쳐도 1인자 품격과 여유 잃지 말아야"
학연·파벌 없는 투명한 협회 운영…세계 최고 성적 비결
‘슈팅 로봇’ 등 현대차 최첨단 R&D 역량 양궁에 쏟아부어
  • 등록 2024-12-22 오후 2:06:06

    수정 2024-12-22 오후 2:06:06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어느 분야든 최고라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1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난해 12월1일 그랜드워커힐서울호텔에서 열린 ‘한국양궁 60주년 행사’에서 정의선 대한양궁협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째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양궁. 금메달을 따면 ‘본전’이고, 은·동메달은 너무 아쉽다. 이러한 국민적 부담에 짓눌린 선수들에게 정 회장이 던진 메시지는 ‘결과와 상관없는 스포츠맨십의 품격’이었다. 우리 선수단은 올해 8월 파리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이라는, 한국 양궁의 품격에 걸맞은 최고의 성적으로 화답했다.

(오른쪽부터)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대표팀 남수현, 임시현, 전훈영 선수와 함께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양궁협회, 정의선 14대 회장 추대…6연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한국 양궁을 4년 더 이끈다. 대한양궁협회는 지난 20일 체육계 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선거운영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쳐 정 회장을 제14대 양궁협회장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정 회장은 2005년 첫 취임 이후 6연속 양궁협회장을 역임하게 됐다. 내년 1월 대의원 정기총회에서 공식 취임한다.

우리 양궁 국가대표팀은 정 회장 취임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총 5회의 하계올림픽에서 18개의 금메달, 3개의 은메달, 4개의 동메달을 획득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외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양궁월드컵, 세계대학생경기대회, 유스올림픽대회 등 다양한 연령대가 참가하는 수많은 국제, 대륙, 연맹 대회에서 세계 최정상의 성적을 고루 거뒀다.

올해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 자리를 수성한 것은 현대차그룹의 폭풍 성장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세계 완성차 브랜드 톱3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양궁협회는 “정 회장이 한국 양궁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협회 행정운영체계 고도화, 국가대표 지원 및 우수 인재 육성, 글로벌 역량 강화 등을 통해 본질적인 경쟁력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총수로서 글로벌 시장 역량 강화, 미래 친환경차·자율주행 등 중장기 비전 제시 등을 강조해왔다.

당연한 금메달은 없다. 한국 양궁이 영광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투명한 협회 조직과 공정한 선수 선발 과정,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전폭적 지원 때문이다.

정 회장은 양궁협회를 국내 스포츠 단체 중 가장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해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이끌었다고 인정받는다. 양궁협회의 3대 원칙은 ‘공정, 투명, 탁월’이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지연, 학연 등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이 전무하다. 국가대표는 기존의 성적이나 명성은 배제한 채 철저하게 경쟁을 거쳐 현재의 성적으로만 선발된다. 코칭 스태프도 공채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등용한다.

파리올림픽이 끝난 후 우리 체육계는 여러 협회의 비위 및 선수와의 마찰 건이 알려지며 파열음을 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아무런 잡음 없이 매대회 ‘생각한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한국 양궁을 언급하며 “정의선은 양궁협회에서 그만 손 떼고 OO협회장으로 가라”, “△△협회도 맡아 달라”는 뼈 있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슈팅 로봇’ 등 현대차 최첨단 R&D 역량 이식

파리올림픽을 앞둔 지난 7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양궁 국가대표 스페셜 매치에서 현대차가 개발한 슈팅 로봇과 상대하는 임시현 선수(사진=대한양궁협회)
현대차그룹의 최첨단 연구개발(R&D) 역량도 한국 양궁의 금빛 질주에 한몫했다. 정 회장은 양궁 선수들의 훈련과 실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2016년 리우올림픽부터 현대차그룹의 첨단기술을 훈련에 접목했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는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개인 훈련용 슈팅로봇 △야외 훈련용 다중카메라 △복사냉각 모자 △선수 맞춤형 양궁 그립 등을 전폭 지원했다.

특히 현대차의 로봇 기술이 집약된 ‘슈팅로봇’은 선수들의 멘털 훈련 특급 도우미였다. 1대 1경기에 대비한 훈련을 위해서는 상대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하고 나면 선수단(남 3명, 여 3명) 서로 외에는 훈련을 함께할 상대 선수를 섭외하기 어렵다. 슈팅로봇이 바로 실전 훈련 도우미 역할을 했다.

슈팅로봇은 실시간 제어 소프트웨어와 풍향 및 온·습도 센서를 이용해 바람 등 외부 환경 변수를 측정한 후 조준점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보정하며 활을 쏜다. 명중률이 무려 평균 9.65점 이상이다. 파리올림픽에 앞선 지난 7월 슈팅로봇과 일전을 치른 임시현(한국체대)은 “로봇이 100%에 가깝게 10점을 쏘는 걸 보고 많은 압박을 느꼈다. 힘든 상대를 만났을 때의 긴장감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임시현은 파리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치’(사진=현대차그룹)
그럼에도, 정 회장은 파리올림픽 쾌거 후 “내가 운이 좋은 것 같다” “선수들이 잘해주는 덕분에 내가 묻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1985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래 올해 재선임된 정 회장에 이르기까지, 40년간 한국 양궁과 동행하며 우리 양궁이 세계 양궁계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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