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 기업들이 행동주의펀드들의 타깃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격 받은 한국 기업 수가 코로나19 직전 대비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25일 한국경제인협회가 김수연 법무법인광장 연구위원에 의뢰한 연구 ‘주주행동주의 부상과 과제’에 따르면, 데이터 조사업체 딜리전트의 집계 결과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은 2019년 8개에서 지난해 77개로 4년 만에 9.6배 증가했다. 이는 미국(550개), 일본(103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 (출처=한국경제인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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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펀드는 타깃 기업의 지분을 소수 매입한 뒤 언론을 활용해 다른 주주들을 설득하거나 주주총회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업 경영진과 적대 관계를 형성한다. 지분을 대량 매입해 경영권을 확보한 후 기업가치를 개선해 매각하거나 기업공개(IPO) 등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사모펀드와는 다르다.
딜리전트 집계를 보면, 지난해 조사 대상 23개국에서 아시아 지역을 겨냥한 행동주의펀드 공격은 총 214건 발생했다. 전년(184건) 대비 16.3% 늘었다. 한국 외에 일본은 지난해 103개로 2019년(68개)보다 1.5배 증가했다. 김수연 연구위원은 “행동주의펀드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기업들이 손쉬운 먹잇감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 행동주의펀드의 집중 공격에 시달리면서 아예 회사를 비공개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김 연구위원은 전했다. 비상장으로 전환한 일본 기업은 2015년 47개사에서 2022년 135개사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행동주의펀드,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각 투자자들의 수익률 제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추세여서, 기업들이 받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경영권 위협 등의 수위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이외에 별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는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