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설농탕 회장의 3억 짜리 버스토큰

[현장에서]
연구비 부족하다는 소식에 3억 1200만원 쾌척
호주머니 속 소지품에는 버스토큰 있어
고령의 나이에 양자컴 뛰어든 조장희 박사
"새로운 아이디어 적극 수용하는 연구환경 필요"
  • 등록 2023-02-10 오전 10:29:23

    수정 2023-02-10 오전 11:16:52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세계 최초로 양전자단층촬영기(PET)를 만들고 초전도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개발에 참여한 조장희 박사(고려대 석좌교수)이야기다. 지난 7일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조 박사는 MRI에 필요한 액체헬륨을 대체할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불연듯 떠오른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줬다.

1992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서울분원에서 근무할 당시, 갑자기 경비실에서 누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누군가 했더니 허름한 옷차림을 한 처음 보는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쫓겨난 후였다. 그분을 연구실로 데려와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신선설농탕 사장인데, 연구비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보고 왔다. 뭐 필요한 거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조 박사는 “액체헬륨 가격이 많이 올라 헬륨 값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한 자기장을 걸어주기 위해 초전도자석을 이용하는 MRI는 초전도자석을 유지하기 위해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때 이용하는 것이 헬륨이다. 당시 MRI 실용화 연구를 하던 조 박사는 헬륨 가격이 오르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처음 본 낯선 남자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는 흔쾌히 “그럼 그 헬륨 값 내가 내겠소!”라고 했다.

오억근(왼쪽) 신선설농탕 회장이 2021년 10월 지스트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오 회장은 지스트 개원 초기였던 1998년 기관을 방문한 외국인 손님에게 대접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1억 5000원을 기부했다.
조장희 박사가 7일 서울 고려대 연구실에서 MRI방식을 활용한 양자컴퓨터 작동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이후 오억근 신선설농탕 회장은 매달 수백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후에 그는 카이스트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는데 기사화된 내용을 보면 5년간 매월 400만 원, 이후 3년간 200만 원씩 총 8년간 3억 1200만 원을 지원했다. 이 같은 연구비를 바탕으로 조 박사는 MRI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고 2009년 7테슬라MRI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게 된다.

조 박사는 또 오 회장에게 MRI를 한 번 찍어보라고 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강한 자기장을 사용하는 탓에 MRI를 찍을 때는 반드시 몸에 착용한 금속 물질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오 회장 역시 호주머니에 있던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냈는데 버스 토큰이 보였다. 조 박사는 “매달 몇 백만 원을 투척하면서도 버스를 타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조 박사는 최근에는 MRI를 활용한 양자컴퓨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MRI는 강력한 자석을 이용해 환자의 체내에 있는 수소 원자를 회전시킨 후,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는 원자스핀 현상을 이용해 촬영한다. 조 박사는 이를 활용해 큐비트를 만드는 MRI.Q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조 박사는 단일 화학물을 구조를 분석하는 핵자기공명(NMR)과 달리, MRI는 경사자장코일을 활용하기 때문에 큐비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양자역학 쪽에서는 대중적 이야기가 아닐뿐더러 고령의 연구자라는 선입관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세계적인 석학조차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은 1992년이나 2023년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조 박사는 “양자컴퓨터는 아직 헤게모니를 이룬 방식이 없고,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많이 뒤떨어져 있다”면서“새로운 아이디어가 이런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적극적으로 수용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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