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미국, 영국 등도 우리나라처럼 기준금리 인상기이지만 금융불안이 번지자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상충되는 문제에 대응하는 중앙은행의 정책 의도일 뿐 실제 시장에서 이를 분리해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중앙은행 자금은 일시에 들어왔다가 빠지더라도 ‘마중물’ 역할을 해 몇 배의 유동성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물가안정’…금융불안 커지면 단기 ‘유동성’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14일 ‘긴축 기조하 금융불안 발생시 주요국 중앙은행 대응 사례 및 시사점’이라는 블로그 글을 통해 “국내에서 미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부동산 PF 등과 관련한 불안 요인이 잠재해 있고 물가 전망 관련 불확실성도 높은 상황”이라며 “향후 금융부문의 리스크가 증대되는 경우 작년에 그랬듯이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금융불안에 대해선 시장 안정화 조치 등을 통해 분리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은은 작년 4분기 부동산 PF 관련 자금 시장 불안에 대응해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으로 시장에 12조원이 넘는 돈을 공급해 금융불안에 대응함과 동시에 11월 기준금리를 25bp 올려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나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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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국장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 특징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대한 분리 대응 △명확하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신속하게 대응하되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한시적이고 선별적인 수단 활용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기임에도 금융안정에 즉각 대응하는 것은 금융위기 발생시 경제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도 ‘분리 대응’해 받아들일지는 의문
이러한 조치들은 한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서 정책 상충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상충된 정책에 분리 대응하겠다는 것은 정책 의도일 뿐 실제로 시장이 이를 분리해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작년말 단기금융시장 발작을 진정시키기 위한 한은의 유동성 공급 이후 지표금리인 양도성 예금증서(CD)금리, 국고채 3년물 금리 등이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일이 잦아졌다. SVB 부도 사태 이후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날 91일물 CD금리는 3.43%,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215%로 기준금리보다 낮다.
중앙은행이 단기간에 자금을 공급한 후 뺀다고 해도 중앙은행 자금은 몇 배의 통화를 창출하기 때문에 유동성 공급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융안정을 시켰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유동성’으로 막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역으로 현재의 금융시장이 높은 기준금리를 견디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번 금융시장에서 불이 난 것을 경험한 중앙은행들이 얼마나 더 긴축적으로 갈 수 있을지에도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