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국장 "'물가는 기준금리로, 금융불안은 '유동성'으로 분리 대응"

홍경식 통화정책국장, 블로그 통해 밝혀
한은도 작년 레고랜드發 PF 사태 '물가·금융안정' 분리 대응
美·英도 같은 방식으로 금융불안 대응
시장금리는 오르든지 내리든지 둘 중 하나인데…
정책 수요자 입장서도 '분리' 가능한 영역일지는 의문
  • 등록 2023-04-14 오후 5:26:47

    수정 2023-04-14 오후 5:26:47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며 ‘긴축’ 수준을 유지해 ‘물가 안정’에 대응하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금융불안이 커지면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 안정’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 금융 안정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정책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작년말 레고랜드 부도 사태 이후 금융불안이 심해지자 일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중단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등도 우리나라처럼 기준금리 인상기이지만 금융불안이 번지자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상충되는 문제에 대응하는 중앙은행의 정책 의도일 뿐 실제 시장에서 이를 분리해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중앙은행 자금은 일시에 들어왔다가 빠지더라도 ‘마중물’ 역할을 해 몇 배의 유동성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물가안정’…금융불안 커지면 단기 ‘유동성’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14일 ‘긴축 기조하 금융불안 발생시 주요국 중앙은행 대응 사례 및 시사점’이라는 블로그 글을 통해 “국내에서 미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부동산 PF 등과 관련한 불안 요인이 잠재해 있고 물가 전망 관련 불확실성도 높은 상황”이라며 “향후 금융부문의 리스크가 증대되는 경우 작년에 그랬듯이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금융불안에 대해선 시장 안정화 조치 등을 통해 분리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은은 작년 4분기 부동산 PF 관련 자금 시장 불안에 대응해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으로 시장에 12조원이 넘는 돈을 공급해 금융불안에 대응함과 동시에 11월 기준금리를 25bp 올려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나간 바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3월 12일 SVB 부도 사태 이후 지방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신규 대출 프로그램(BTFP)을 도입했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설립한 가교 은행에도 유동성을 공급했다. 반면 같은 달 22일엔 정책금리를 25bp 인상하며 물가안정에 의지가 있음을 보여줬다. 스위스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3월 19일 UBS가 크레디트 스위스(CS)를 인수·합병하는 데 최대 2000억프랑의 유동성을 지원함과 금리를 50bp 인상했다. 영란은행(BOE)은 작년 9월 국채금리 급등에 대응하여 650억 파운드 규모의 국채 매입하면서 이는 금융안정 목적이고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 긴축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출처: 한국은행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하되 금융시장에 발생한 불안에 대해선 대출,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불안 대응은 통화정책의 주된 파급 경로인 금융시장의 기능을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정책금리는 물가안정에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했다는 점도 같다.

홍 국장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 특징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대한 분리 대응 △명확하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신속하게 대응하되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한시적이고 선별적인 수단 활용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기임에도 금융안정에 즉각 대응하는 것은 금융위기 발생시 경제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홍 국장은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향후 금융부문 리스크가 증대되는 경우 작년 4분기처럼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나가고 금융불안에 대해 시장 안정화 조치 등을 통해 분리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금융부문이 통화정책 운용을 제약하는 금융우위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우위는 금융불안이 과도해 금리 인상 등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이 제약되는 상황을 말한다.

시장도 ‘분리 대응’해 받아들일지는 의문

이러한 조치들은 한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서 정책 상충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상충된 정책에 분리 대응하겠다는 것은 정책 의도일 뿐 실제로 시장이 이를 분리해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작년말 단기금융시장 발작을 진정시키기 위한 한은의 유동성 공급 이후 지표금리인 양도성 예금증서(CD)금리, 국고채 3년물 금리 등이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일이 잦아졌다. SVB 부도 사태 이후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날 91일물 CD금리는 3.43%,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215%로 기준금리보다 낮다.

중앙은행이 단기간에 자금을 공급한 후 뺀다고 해도 중앙은행 자금은 몇 배의 통화를 창출하기 때문에 유동성 공급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융안정을 시켰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유동성’으로 막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역으로 현재의 금융시장이 높은 기준금리를 견디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번 금융시장에서 불이 난 것을 경험한 중앙은행들이 얼마나 더 긴축적으로 갈 수 있을지에도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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