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일본의 반도체 호황기를 이끌던 도시바가 74년 만에 상장 폐지되면서 상장기업 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한때 삼성전자에 기술을 전수할 만큼 세계적인 기업이었던 도시바는 경영진의 부정과 더불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점차 뒤처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도시바는 상장폐지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5년 뒤 재상장하며 재도약을 노릴 방침이다.
| 일본 도시바(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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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시바는 20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되며 마지막 거래일인 19일 0.1% 하락한 4590엔으로 마감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도시바그룹은 전날 성명을 통해 “이제 새 주주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며 “기업 가치를 더욱 높이고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가 상장된 이후 수년 동안 경영진에 대한 이해와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한 주주와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바는 일본 최초로 냉장고, 세탁기, 컬러TV 등을 내놨고 세계 최초로 노트북과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개발한 초일류기업이다. 삼성전자보다 앞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어 1992년 낸드플래시 기술을 삼성전자에 전수하는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해왔다.
그러다 2248억엔(약 2조원)을 높여 기재하는 회계 부정, 미국 원전 자회사의 손실 등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다 가장 중요한 메모리 사업까지 매각하며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경직된 조직문화도 몰락길을 걷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88년 50.3%에서 2021년 6% 수준까지 떨어지며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도시바의 새로운 주인은 일본 투자펀드 ‘일본산업파트너즈’(JIP)다. JIP가 이끄는 컨소시엄은 2조엔(약 18조원) 규모로 도시바를 인수했고, 오는 2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종합금융그룹 오릭스와 전력회사 주부전력 등 JIP나 출자기업 출신으로 바꿀 방침이다. 시마다 다로 도시바 최고경영자(CEO)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수익성이 높은 디지털 서비스에 집중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도시바가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만큼 향후 도시바의 행보를 주시할 방침이다. 도시바가 약 10만 6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일부 사업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JIP는 도시바의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 자산 매각 등을 통해 5년 뒤 재상장하겠단 목표로 기업 가치를 올리는데 집중할 방침이다. JIP 컨소시엄에 포함된 약 20개 일본 기업이 도시바와 협력하며 사회 인프라, 양자 기술 등 성장 분야에도 주력한다. 앞서 이달 초 도시바는 반도체 제조기업 로움과 협력해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전력 반도체를 제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바의 사례를 통해 기존 기업들도 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통기업인 도시바의 몰락은 시대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MZ세대와 4차 산업의 발빠른 혁신을 따라 가고, 함께 하지 못한다면 어떤 기업도 건재할 수 없단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