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31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방통위가 국정 목표에 부응하는 정책 성과를 내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 재가를 한 이동관, 김홍일 전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의 자진 사퇴로 인해 혼란스러운 방통위 내부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위원장은 “정치적 탄핵 앞두고 방송과 통신 정책이 중단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두 분의 큰 희생이 있었다. 두 분 전임 위원장의 희생과 여러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위원장으로서 방통위에 부여된 책무를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했다.
방통위 독립성 훼손 비판도
그러나 이 발언은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통위 설치법에 따르면,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의 중앙행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의 행정감독을 받지 않으며(제3조 제2항), 상임위원 결격사유로는 정당법에 따른 당원이나 3년이 지나지 않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멤버와 같은 정치적 직책을 가진 인물을 배제한다(제10조 제1항과 6항). 안정상 중앙대 겸임교수는 “방통위 설치법에는 방통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항이 명시돼 있는데, 이진숙 신임 위원장이 방통위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대통령의 국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방통위의 존재 의의를 수장이 스스로 멸각하는 것이고 방통위설치법의 입법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진숙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공영방송 이슈 뿐아니라, 미디어 콘텐츠 혁신 성장을 위한 통합미디어법제 마련, 인공지능(AI) 서비스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AI 이용자보호법 추진, 불법 스팸과 유해 정보에 대한 엄정 대응, 미디어 복지 격차 해소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미디어·IT 업계에서는 8월 12일 임기가 끝나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을 두고 여야가 탄핵 압박과 자진 사퇴를 반복하는 것은 방통위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야가 MBC 사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물로 앉히기 위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방통위가 방송과 통신분야 전문 규제기구라는 본래의 설립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 시기가 야당의 탄핵 소추안 발의와 이진숙 위원장의 자진 사퇴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방통위는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7월 31일 오후 2시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 의결 회의를 개최한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며, 방문진 이사 선임 시기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방송계 관계자는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려면 헌법과 법률 위반 사항이 있어야 한다”며 “방통위가 2인 체제에서 방문진 이사를 선임한다면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고, 이 경우 이진숙 위원장은 자진 사퇴하거나 탄핵안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이 방문진 이사를 선임할 경우,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경고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공성을 지켜야 할 중요한 자리에 이진숙 위원장을 임명한 것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탄핵소추안 발의는 물론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과 관련해 대전 경찰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