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현대자동차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해 3월부터 가동중단 상태인 러시아 공장(HMMR)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다만 현대차는 2년 내 공장 지분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바이백 조건(콜옵션)을 끼워넣어 향후 전쟁이 마무리된 이후 빠른 재진출을 위한 장치도 마련해뒀다. 러시아 시장은 전쟁 발발 전 현대차·기아가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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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현대차는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 위치한 러시아 공장 지분 매각 안건에 승인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공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지난해 3월부터 가동 중단된 상태로 현재 현대차는 러시아 현지 업체인 아트 파이낸스(Art-Finance)와 공장 지분 매각 관련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놓고 협상 중이다. 여러 현지업체들이 인수 의향을 밝혀 다각적으로 매각을 검토해왔으나 이중 아트파이낸스가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는 게 현대차 측 설명이다.
현대차는 이번에 2020년에 인수한 GM(제너럴모터스) 공장 부지도 함께 매각하기로 했다. 다만 러시아 현지 상황 등을 고려해 기존 판매된 차량에 대한 AS 서비스 운영은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이번 러시아 공장 지분을 명목상 1만루블(약 14만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한 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한 나라의 기업들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사실상 외국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있다. 지난 4월 러시아에서 철수한 프랑스 자동차 업체 르노가 소유하고 있던 현지 자동차 기업 아브토바스 지분 68%를 단돈 2루블(약 50원)에 넘긴 게 대표적이다.
이번 계약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현대차가 매각한 러시아 공장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항(콜옵션)을 넣었다는 데 있다. 현대차는 2년 내 콜옵션을 발동할 수 있으며 공장을 되살 때 가격은 해당 시기의 시세에 맞추기로 계약했다. 현대차로서는 사실상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헐값에 내준 공장을 나중에는 수천억원의 돈을 주고 되사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이 정도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발발 전 현대차·기아(2021년 8월 기준)는 러시아에서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28.7%)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1년 러시아 공장(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과 함께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기아는 10년 넘게 공을 들이며 차근차근 확장해온 곳이다. 2014년 미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와 저유가로 판매 급감 위기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지난 2021년 기준 연간 23만대의 생산능력을 가진 곳으로 크레타, 솔라리스, 리오 등을 생산해왔다. 이곳에 근무하는 현지 직원만 2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도 이번 러시아 공장 매각이 전략적으로 좋은 판단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판매량이 좋았었지만 이는 대부분 내연기관차였다”며 “현재 친환경차 시장 확장에 주력하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2년 정도 추이를 지켜보고 다시 진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