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예금 찾아 나온 고객들 "내 돈은 찾았지만 스타트업 피해는 걱정"

당국 폐쇄한 SVB·시그니처은행 둘러보니
"온라인뱅킹 잘 안된다"…고객들 길게 줄서
현금·수표·계좌이체 중 선택…대부분 "현금"
  • 등록 2023-03-14 오후 7:25:01

    수정 2023-03-14 오후 10:05:48

[뉴욕·실리콘밸리=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김혜미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영업 재개일인 13일 오전 9시50분(미국 서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앞에는 30여명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공식 영업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였지만, 지난 10일 이후 첫 영업일인 이날은 오전 9시부터 문을 열었다. SVB 은행 직원과 파산 관재인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직원이 나와 부르면 차례로 한 명씩 들어갔다.

정상 영업은 재개했지만 모바일과 온라인 뱅킹 사용은 완전히 복구하지 않은 듯했다. FDIC 파견 직원들은 몰려든 취재진에 “현재 영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직접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모바일 앱으로 출금이 불가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시간이 갈수록 기다리는 고객들은 늘어갔다. 불만 가득한 이들을 달래기 위해 직원들이 사전조사에 나섰는데, 대부분 고객들은 원하는 업무에 대한 물음에 “현금”이라고 짧게 답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영업 재개일인 13일 오전 9시50분(미국 서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앞에서 한 고객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김혜미 기자)


고객들 길게 늘어선 SVB 본사 앞

예금을 찾은 고객들은 한층 편안한 얼굴로 은행을 나왔다. 현금이 든 것으로 보이는 두툼한 종이 봉투를 손에 들고 있기도 했다.

25년간 SVB와 거래했다는 벤처투자가 밥(77)씨는 밝은 얼굴로 은행 문을 나섰다. 그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주말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 지금은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예금 출금은 현금이나 수표, 타행계좌 개설 및 이체 등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현지 벤처투자업계에서는 SVB 예금주 가운데 타행계좌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줄을 선 고객들 중 일부는 타행계좌 개설은 어떤 절차로 이뤄지는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를 꼼꼼히 묻기도 했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 FDIC가 지난 주말 모든 예금을 보호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번 사태를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라는 한 고객은 “시스템상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웃으며 말했다.

미국 동부 뉴욕 역시 위기감이 감돌았다. 뉴욕주 금융서비스국이 전날 밤 뉴욕을 기반으로 한 시그니처은행을 전격 폐쇄하고 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하면서다. 예상치 못한 SVB 조기 파산 조치 이후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공포가 확산하자, 금융당국이 지체하지 않고 또 폐쇄에 나선 것이다.

이날 오후 2시께(미국 동부시간)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한 시그니처은행 지점.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방송 카메라 세 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보안 요원이 FDIC 파견 직원으로 보이는 한 인사를 소개해 줬다. 현금 인출기를 살피러 나온 그 직원에게 예금 관련 문의를 하자 “지금은 예금을 인출하는데 문제가 없다”며 “맨해튼에 있는 모든 지점들이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걱정할 필요 없다”며 재차 안심시켰다. 실제 시킹알파 등에 따르면 가상자산 채굴기업 마라톤디지털은 “시그니처은행에 예치한 현금 자산은 안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문을 한 번 더 열어야 들어갈 수 있는 지점 내부는 고객들이 꽤 많았다. 적어도 20명 가까이 돼 보였다. 당국의 폐쇄 소식을 듣고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달려온 것이다. 부동산 관련 일에 종사한다고만 밝힌 한 50대 고객은 “돈을 찾기는 했지만 파산 얘기를 듣고는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시그니처은행 이사회 멤버인 바니 프랭크 전 하원의원은 CNBC에 나와 “지난 10일 하루에만 100억달러 이상 예금이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시그니처은행을 제외하면 뉴욕시 인근에 이렇다 할 패닉은 아직 없어 보였다. 이날 주가가 61.83% 폭락하며 ‘제2의 SVB’ 우려를 낳았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맨해튼 내 한 지점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직원들은 6~7명 정도 있었고, 2명의 고객만 상담을 받고 있었다. 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초대형 은행의 현금 인출기 역시 한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영업 재개일인 13일 오전 9시50분(미국 서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앞에서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사진=김혜미 기자)


“마땅한 구매자가 없네”…美정부, SVB 매각 재추진

미 금융당국은 SVB매각을 추진하고 있는데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전날 진행된 첫 입찰에서 마땅한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유력 후보였던 PNC파이낸셜이 입찰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가 SVB 실사 후 참여 계획을 철회했다. 미 대형 은행은 단 한 곳도 구매 의사를 밝힌 곳이 없었다. 1건의 응찰이 있었지만 이는 FDIC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 FDIC가 SVB의 새주인을 찾기 위한 재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재입찰 시기 등 세부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잠재적 구매자 입장에선 상황이 개선됐다. 보호 한도(계좌당 25만달러)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게 됐고, 매각 조건도 손실 분담 합의 등을 통해 인수자 측에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상황이 나아졌더라도 재입찰에서 미 정부를 만족시킬 만한 구매자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미 정책 조사업체 판게아 폴리시의 게리 헤인즈 창업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SVB의 새 주인은 지불능력과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2시께(미국 동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한 시그니처은행 지점 내부에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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