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인 A그룹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자 고위 임원들을 급히 소집했다. 그 직후 으레 그렇듯 태스크포스(TF) 등을 꾸렸다. 다만 정치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 보니, 환율 변동성을 가장 주시해야 한다는 정도 외에는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A그룹의 부사장급 임원은 “일단 보수적인 접근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했다.
대내외 정치 리스크가 극에 달하면서 기업들이 움츠러들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거시 지표도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재계와 시장에서는 기업 주도의 ‘경제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17일 재계 등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은 최근 트럼프 2기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갑자기 치솟은 환율(원화 약세) 등 금융시장과 거시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1500원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최근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원화 약세의 장기 고착화 가능성이다. 1%대 잠재성장률 우려에 대내외 정치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가 계속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그룹의 한 임원은 “환율 1200원대 경제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들이 있다”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 (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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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뉴노멀’은 여러모로 악재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해외 투자를 꺼릴 수 있다. 기업들이 해외로 뻗지 못하고 나라 안에서 도는 것은 그 자체로 치명타다. 내수 역시 마찬가지다. 환율이 뛰면 수입물가 상승→소비심리 위축→내수 침체 등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기업들의 ‘투자 시계’가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경제 체력을 키울 수 있고 원화 약세 고착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경쟁국 기업들과 ‘평평한 운동장’에서 싸울 환경은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반도체 특별법 등은 국회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나 “무쟁점 법안만이라도 연내 처리해달라”며 “(국회증언법 등) 경제계 우려 법안은 충분한 논의시간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했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소비 진작책을 꺼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통화든 재정이든 완화 기조를 취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