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예방 자율조치 소홀했을 때만 처벌…노력해도 생긴 사고엔 예외 둬야”

[중대재해처벌법 1년]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인터뷰
“획일적 기준, 급변하는 산업구조 못 따라가…처벌 회피 우선하게 해”
“영국처럼 방대한 법령 중심 규제를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해야”
“중처법도 이런 정신 이미 담겨…법 취지 살리도록 개선 검토할 것”
  • 등록 2023-01-27 오전 5:00:00

    수정 2023-01-27 오전 10:26:12

[대담=윤종성 경제정책부장·정리=최정훈 기자]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경영계·노동계에게 이익이냐, 불이익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업재해 다발국 불명예를 벗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 중대재해 관련 법과 정책, 감독은 노사가 함께 만든 위험성 평가가 중심이 된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기반이 될 겁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1년을 맞아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일터의 안전은 나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함께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제거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돼 취임 8개월째를 맞은 이 장관은 중대재해 감축을 업무의 최우선순위에 둬왔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 공원 내 산재희생자 위령탑을 찾아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대재해 감축은 녹록지 않았다. 대전 아웃렛 화재, 안성 물류창고 붕괴 등 대형사고도 잇달아 터졌다. 일터에서 숨지는 근로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중처법도 1년 내내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지난해 받은 중대재해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중처법 적용 대상 사업장에서는 사망자가 오히려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중대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에 머물러 있다.

이 장관은 “중처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중대재해가 줄지 못한 것은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는 방증”이라며 “기술과 산업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세세한 안전 규정을 수백 개씩 두고 사고가 나면 처벌하는 방식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사가 참여해 사업장의 위험을 스스로 발굴하고 제거하는 방식과 감독, 처벌이 병행되면 올해는 획기적인 중대재해 감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음은 이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중대재해 감축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방향은 무엇인가

△대통령께서도 항상 강조하시는 사항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 중 가장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담아 중대재해 감축을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 분야 1번 국정과제로 반영했다. 지난해 11월엔 구체적 목표와 방향을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도 발표했다. 산업안전 정책 패러다임을 기존의 규제와 처벌에서 책임에 기반한 자율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사업장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참여해 자체 규범을 마련하고, 스스로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자율적 예방체계 구축을 지원하면서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엄중한 결과책임 부여할 방침이다.

-강한 의지와는 달리, 중대재해 감축 성과는 내지 못했다.

△지난 정부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김용균법),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 측면의 노력이 있었지만 사고를 획기적으로 감축하지 못했다. 여전히 사고사망만인율은 OECD 38개국 중 34위에 머물러 있고 8년째 0.4~0.5 대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간의 규제와 처벌 중심의 사고감축 전략은 이제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진단한다. 처벌 위주의 획일적인 법령상 기준은 급변하는 산업구조 현실에 뒤떨어지고, 노사가 안전에 투자하기보다 당장의 처벌을 회피하는 데 우선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숙한 노사의 안전의식도 사고감축 정체의 원인이다. 여전히 기업은 안전을 비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근로자는 안전을 특정인의 일로만 인식하고 참여에 소홀한다.

-시행 1년을 맞은 중처법의 한계가 뭐라고 보나.

△법 시행 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안전이 경영의 핵심과제로 격상되는 등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 수가 적용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은 한계를 드러낸 결과라 본다. 법 적용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줄지않은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법의 취지와 달리 기업들이 실질적인 안전조치보다 로펌을 통한 서류작업 등 처벌 회피 중심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 또 지난해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 사고, 안성 물류창고 붕괴사고 등 법 적용 대상에서 발생한 대형사고 사망자 수가 전년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생산활동이 회복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한다. 내년 1월이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도 법 확대 적용되기 때문에 법 이행과정에서 나타난 한계를 개선하고 서둘러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11일 발족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에서 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기업의 안전투자를 촉진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 중대재해 발생 현황(자료=고용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 건가.

△중대재해처벌법은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 등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정신을 이미 담고 있는 법이다. 다만, 경영책임자 개인에 대한 강한 형사처벌로 인해 취지와 달리 경영책임자 보호 중심의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점과 현장에서 지속 제기되는 의무의 모호성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중대법의 개선을 검토하고자 한다. 우선 형사처벌 일변도인 현 제재방식의 개선을 검토한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의 경우 경영체계 미비로 인한 사망사고 책임을 경제적 제재를 통해서만 기업에게 부과하고 있다. 또 법상 의무를 위험성 평가와 재발방지대책 등 핵심사항 중심으로 명확하게 할 방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중대재해를 감축하는 국제 기준이 사후적인 처벌이 아닌 예방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형사처벌 일변도의 제재방식이 경영책임자 처벌 회피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중대재해를 감축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제재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형사처벌에 경제제재를 보완하는 방식, 혹은 형사처벌 자체를 경제제재로 전환하는 방식 등이 TF 내에서 검토될 것이다. 중요한 건 법이 취지에 맞게 작동해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중처법의 수사 속도도 느리고 기소 건수가 적은 것은 법의 의무주체나 처벌요건의 모호성 때문이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 기소를 하고 재판에 나선다. 위험성 평가 중심으로 처벌요건을 명확하게 하는 등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다.

-중처법 요건으로 기업의 노력 정도를 보겠다는 뜻인가

△위험성 평가는 노사가 함께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백 개에 달하는 산업안전 관련 법령을 현장에 맞게 추려서 적용하라는 의미다. 다만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평가를 한 뒤에도 위험을 제거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노사가 협력해서 위험을 줄였으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평가를 통해 관리를 열심히 했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사례들이 걸러질 수 있다. 사업장이 열심히 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것과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정식 장관은…

△1961년생 △충북 제천 △서울대 경제학과 △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한국노총 사무처장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삼성전자 자문위원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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